길 가던 나그네가 굴뚝 옆에 땔감이 잔뜩 쌓여 있는 것을 보고 화재의 위험이 있으니 다른 곳으로 옮기라 했다. 주인, 무시하고 그대로 방치했다가 결국 불이 났고 이웃의 도움으로 겨우 화마를 잡았다.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 이웃에게 술과 음식을 대접했지만 진즉에 땔감을 치웠더라면 이런 자리도 필요하지도 않았을 것이라는 빈축을 샀다. ‘한서’에 나오는 사후약방문 고사의 기원이다.

칼럼 쓰는 날짜가 정해져 있다 보니 결국 사후약방문 꼴이지만 그래도 글을 쓰는 것은 나그네의 충고가 아직 일부 유효하기 때문이다. 강서구청장 보궐 선거 참패 이야기다. 시원하게 선거를 말아먹은 국민의힘 지도부가 사퇴하는 대신 혁신위원회를 꾸린다는 소식이다. 역시 찍어먹고도 된장인지 아닌지 헛갈리는 국민의힘다운 발상이다.

무능을 소문내고 이렇게 당당하기도 어려울 것인데

분란의 당사자를 재공천한 것이 ‘용산’의 시그널이었고 때문에 책임으로부터 용산보다 멀다는 것이 국민의힘 지도부 사퇴 불가의 이유다. 그러나 시그널은 시그널이고 이를 푸는 것은 정치다. 국민의힘은 시그널에 확성기를 달아 이를 100배 증폭시켰다. 대체 강서구청장 자리 따위가 뭐 대단한 거라고(강서구 주민 모독하는 거 아니다. 구청장 자리 폄하하는 거다) 그런 짓을 했는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재공천하고 모른 척 내버려두면 그만이었다. 언론이 기를 쓰고 판을 키우려 들어도 들은 척 만 척하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화답하여 신인왕전 복싱 경기를 세계 헤비급 타이틀 매치로 키웠다. 당 지도부와 중진들이 총출동하여 선거를 앞두고 ‘D- 며칠’ 하는 식으로까지 전 국민의 관심사로 만들었다. 유권자 수 50만 명의 일개 구를 서울 총선의 바로미터로 만들었다. 강서구 역사상 구가 이처럼 주목받은 일은 이제껏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시계를 조금 더 뒤로 돌려보자. 여론조사를 해보니 지지율 격차에서 오차범위 밖까지 벌어졌다. 용산의 시그널만 사람 소리고 여론은 개소리인가. 그런데도 당에서는 해볼 만하다는 소리가 나왔다. 심지어 ‘지더라도 한 자릿수 포인트로 지면 사실상 이긴 것’이라는 해괴한 논리도 등장했다. 결국 참패했고 수도권 위기론이라는 엄청난 부담까지 떠안는 처지가 되었으니 이 당의 정치적 감각에 대해 논하는 것이 대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이제는 회의감까지 든다.

기득권 포기는 혁신의 시작이자 끝이며 알맹이

혁신위원회 구성을 두고 당의 한 관계자는 열세인 지역에서 패배했다고 지도체제를 전환하자는 것은 지나친 주장이라고 하셨단다. 이 대목에서 잠시 궁금하다. 혹시 이 사람, 지더라도 한 자릿수 포인트로 지면 사실상 이긴 것이라고 한 그 분과 동일인물 아닌지. 부탁인데 그게 왜 지나친 주장인지 설명 좀 해 달라. 지도체제를 전환하는 게 아니라 아예 변환하는 차원에서 혁신을 해도 부족할 판에 무능을 과시한 자신들이 직접 사태 수습에 나서겠다는 오기의 진의가 결국 기득권 사수가 아니라면 무엇인지 알려 달라. 못 알려줄 것이다. 알지도 못하고 혹시 알더라도 발설하면 안 되는 그들만의 비밀일 것이다.

대신 빤한 일정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뼈를 깎는 노력, 뭐 이딴 소리 하면서. 농담으로라도 그런 소리 마라. 뼈 깎으면 죽는다. 그리고 제 뼈는 제가 못 깎는다. 남이 깎아줘야 한다. 제대로 깎아줄 사람 데려오고 데려온 다음에는 흔들지 말라. 기득권 없애려 둔다고 칼질 하지 말라. 물론 그런 아름다운 일 절대 없을 것이다. 왜? 국민의힘이니까. 사후약방문인 동시에 십 수 년 동어반복이라 쓰면서도 이제 지친다. 세상에서 제일 재미없는 게 국민의힘 조롱하는 일이다. 머리가 없어 약도 못 올리고 가슴이 없어 상처도 못 준다. 국민의힘은 국민에게 해탈하라 한다. 성철 스님 법어가 떠오른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요 국민의힘은 국민의힘이다.

남정욱 객원 칼럼니스트 (대한민국 문화예술인 공동대표)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