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커창 전 총리의 죽음

중국 경제를 시장 주도로 바꾸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리커창(李克强) 전 중국 총리가 총리 자리에서 밀려난 지 지난 1027일 사망했다. 발표에 의하면 그의 사인(死因)은 수영을 하다가 심장마비가 왔다는 것이다. SNS에 건강한 모습이 공개된 지 한 달만에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중국 전역이 크게 동요하고 있다.

중국공산당 1당 독재에서 시진핑 1인 독재로 변이하면서 철권통치 체제를 더욱 강화하고 있는 가운데 시진핑에게 밀려 야인 신세가 된 리커창이 의문의 죽음 소식이 들려왔다. 지금까지 중국에선 공산당의 2인자가 사망할 경우 경천동지할 대란이 폭발했다. 1976년 저우언라이(周恩來)의 사망이 문화대혁명의 난동을 종식시키는 기폭제가 되었고, 1989년 후야오방(胡耀邦) 총서기의 사망은 중국 민주화 운동의 정점인 톈안먼(天安門) 사건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과거사를 의식한 중공 정부의 강력한 통제에도 불구하고 중국 전역에선 시진핑 주석에게 밀려난 리커창에 대한 추모 열기가 뜨겁게 닳아 오르고 있다. 최근들어 중국에서 한 정치인의 죽음에 이렇게 범국민적 애도 분위기가 형성된 경우는 없었다고 한다.

리커창의 추모 열기가 뜨겁게 일자, 그의 죽음으로 인한 대규모 소요사태를 우려한 중공 당국은 리커창 사망 관련 내용을 온라인 상에서 삭제했다.
리커창의 추모 열기가 뜨겁게 일자, 그의 죽음으로 인한 대규모 소요사태를 우려한 중공 당국은 리커창 사망 관련 내용을 온라인 상에서 삭제했다(사진은 MBN 화면 캡처).

 

리커창의 별명은 벽을 돌파하는 사람(破壁者)’이었다. 그는 중국이 폐쇄·자립·자주 노선을 깨고 나와 개방의 길, 시장 자유화의 길로 나가야 한다고 외쳤던 주인공이다. 그러한 리커창의 경제 노선은 리코노믹스(Likonomics,리커창+이코노믹스)라 불렸다. 때문에 기회가 날 때마다 시진핑의 통제경제 정책에 비판의 목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리커창의 사망을 둘러싼 일촉즉발의 위기가 감지되는 가운데 중국공산당은 그에 대한 추모 열기에 찬물을 끼얹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톈안먼 일대에 순찰 병력을 대대적으로 강화했고, 중국의 주요 포털 사이트에서 리커창의 사망 관련 소식이 일제히 삭제되었다. 중국의 여러 대학이 리커창을 추모하는 학생들의 집회를 금지한 소식들이 전해지고 있다.

 

리커창의 갑작스런 죽음 소식이 전해지자 중국 전역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추모하고 나섰다.
리커창의 갑작스런 죽음 소식이 전해지자 중국 전역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추모하고 나섰다.

 

심각한 내수 위축, 가계 소득 감소, 폭증하는 실업률 등 중국 경제의 침체는 중국 경제 개혁 개방의 기수 리커창의 존재를 계속 부각시키는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중공 당국도 어떻게 손 쓸 수 없을 정도로 경제가 주저앉는 와중에 그의 장례식이 열리게 되었다. 어쩌면 리커창의 장례식을 계기로 중국에서 거대한 민주화 열기가 연쇄 폭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 중국에 부는 민주화 바람

지난 20081210, 류샤오보(劉曉波)를 비롯한 303명의 중국 지식인들은 유엔의 세계인권선언 60주년을 맞아 목숨 걸고 ‘08 헌장이란 문건을 발표했다. 그들은 중국공산당의 일당독재를 정면 비판하면서 자유·평등·인권·민주·공화·헌정(憲政)을 전면에 내세운 19개 조항을 선언했다.

‘08 헌장1989년 톈안먼 대학살 이후 지하로 잠적했던 중국의 민주화 세력이 전 세계를 향해 중국의 지성이 건재하고 있음을 알린 신호탄이었다. 중국 지식인 303명은 중국공산당의 일당독재를 전면 부정하고 인권, 자유, 민주를 최고의 가치라고 전 세계에 선언했다.

‘08 헌장은 현행 중화인민공화국 헌법 제1, “사회주의는 중화인민공화국의 근본 제도이다. 중국공산당의 영도는 중국 특색 사회주의의 가장 본질적인 특징이다. 사회주의 제도를 파괴하는 활동은 그 어떤 조직이나 개인이라도 금지된다라는 조항과 정면 배치되는 내용이었다.

, 1979330일 덩샤오핑(鄧小平)이 천명한 4항 기본 원칙, 사회주의 노선, 무산계급 전정(1982년 이후 인민민주독재로 변경), 중국공산당의 영도, 마르크스-레닌주의와 마오쩌둥 사상의 견지를 부정하는 것이었다.

인터넷을 통해 ‘08 헌장이 공개되자 중공 당국은 학자, 변호사, 작가 등 최초 서명자 303명 전원을 공안당국에 연행했다. 하지만 1989년 톈안먼 민주화운동 당시 학생 지도자로 활동했던 류샤오보를 체포 구금하는 선에서 일단락짓기로 결정했다. 나머지 302명은 향후 정치개혁 문제를 공개적으로 거론하지 않는 조건으로 훈방했다.

류샤오보는 2009년 정권 전복 선동죄로 체포되었고, 베이징 인민법원은 그에게 11년 형을 선고했다. 류샤오보는 2010년 옥중에서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중국 정부는 노벨상 선정 위원회에 강력 항의했고, 류샤오보의 노벨상 시상식 참석은 물론, 대리 수상을 막기 위해 류샤오보의 모든 가족과 친척, 인권운동가 등 수백 명을 출국 금지시켰다.

노벨위원회는 상징적으로 빈 의자에 노벨평화상 메달을 놓았고, 시상식 참석자들은 전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3분 동안 기립박수를 쳤다.

 

2010년 12월 10일 노벨위원회 위원장인 투르비오른 야글란드가 중국 당국의 불허로 류샤오보가 노벨평화상 시상식에 참석하지 못하자 빈 의자에 메달과 증서를 올려놓았다.
2010년 12월 10일 노벨위원회 위원장인 투르비오른 야글란드가 중국 당국의 불허로 류샤오보가 노벨평화상 시상식에 참석하지 못하자 빈 의자에 메달과 증서를 올려놓았다.

 

중국 곳곳에서 민주화의 열기가 들끓으면서 헌정 논쟁이 중국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자 그해 5월 중국공산당은 중국 대학에 7가지 사항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조차 하지 말하는 칠불강(七不講)을 비밀리에 하달했다. 이 내용은 상하이 화둥정법대학의 법학자 장쉐중(張雪忠) 교수가 관련 사실을 인터넷에 폭로하면서 세계에 알려졌다.

중국공산당이 금지한 7가지는 서구식 헌정 민주, 보편가치, 시민사회, 신자유주의, 언론의 자유, 중국공산당 역사를 부정하는 역사 허무주의, 중국 특색 사회주의와 개혁개방을 비판하는 중공 특권층의 권귀(권력 귀족) 자본주의였다.

시진핑 체제 들어 칠불강을 통해 개인의 자유가 더더욱 압박을 받는 와중에 옥중에 갇힌 류샤오보의 건강도 심각하게 악화되었다. 류샤오보는 20176월 간암 말기 진단을 받고 병보석으로 풀려났으나 한 달 후인 713일 사망했다. 그의 사망이 발표되자 중화민국의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은 중국몽(中國夢)이 민주주의라면, 대만은 중국대륙에서 이를 실현하는 과정에 필요한 협조를 제공하겠다라는 애도 성명을 발표했다.

 

#. ·중 신냉전, 이념 충돌을 넘어 체제 대결로

중국공산당이 1당 독재에서 시진핑 1인 독재로 진화하여 본격적으로 제국주의적 기질을 폭발하고 있다는 사실은 2020723일 트럼프 행정부의 국무장관 마이크 폼페이오의 공산주의 중국과 자유세계의 미래라는 연설에 잘 나타나 있다. 이날 폼페이오 장관 발언의 핵심 내용은 세 가지였다.

첫째, 시진핑은 파산한 전체주의 이데올로기의 진짜 신봉자이고, 중국은 세계 패권 장악에 나선 독재 국가다.

둘째, 우리가 중국을 바꾸지 않으면 중국이 우리를 바꿀 것이다. 중국공산당으로부터 자유를 지키는 것이 우리 시대의 사명이며, 미국이 이에 앞장서겠다.

셋째, 중국공산당을 바꾸기 위해 반체제 인사를 포함한 중국인들과 손잡고 자유세계의 민주주의 국가들과 새로운 동맹을 추진하겠다는 내용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국무장관 폼페이오는 2020년 중국공산당 정권 교체를 통한 자유민주국가로의 체제 전환을 선언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국무장관 폼페이오는 2020년 중국공산당 정권 교체를 통한 자유민주국가로의 체제 전환을 선언했다.

 

품페이오의 이 연설은 향후 미국이 미·중 신냉전을 어떻게 전개해 나갈 것인지 그 방향을 알리는 의미심장한 내용이 담겨 있다. 미국은 미·중 신냉전의 목표를 중국공산당 정권 교체를 통한 자유민주국가로의 체제 전환으로 정한 것이다.

중국공산당에 대한 견제는 미국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러시아의 무기 생산에 협조한 중국 회사 7곳에 대한 제재 법안을 제출했고, 이탈리아는 중국 주도의 일대일로 사업에서 탈퇴 의사를 밝혔다. 세계 각국은 단순히 정서적 반중(反中)에 머물지 않고, 중국 체제를 비판하는 비중(批中)의 이념 공조, 군사·외교적 목적으로 중국을 압박하는 억중(抑中)의 국제연대를 이루고 있다(송재윤, 슬픈 중국-대륙의 자유인들 1976-현재, 까치, 2023, 11).

 

#. 한미동맹 이탈, 중공의 품에 안기려 했던 문재인 정부

미국 정부가 중국공산당의 정권 교체 시나리오를 준비하고 있을 무렵 한국의 문재인 정부는 한미 동맹의 폐기 선언이나 다름없는 3() 1()을 중국에 약속했다. 31한이란 한국이 미국의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를 추가 배치하지 않고, 미국의 미사일 방어체제(MD)에 참여하지 않으며, 한미일 군사동맹을 체결하지 않는다. , 이미 성주에 배치된 사드마저 운영에 제한을 둔다는 내용이었다.

미국의 글로벌 정책이 중국공산당 타도로 방향을 잡고 나가는 와중에 한국에서는 한국에서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한미동맹 중시 정책과 중국 중시 정책이 반복되는 위험한 외교적 줄타기를 반복하고 있다. 지난 68일 싱하이밍(邢海明) 주한 중국대사는 한국의 대선 출마자이자 제1야당 후보 앞에서 한국은 한미동맹에서 이탈하여 중국과 손잡는 것이 한국의 미래에 유익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여 화제가 되었다.

구한말 격동기에 조선을 관찰한 서양인들은 조선은 스스로의 힘으로 자립할 수 없는 나라, 큰 나라에 의존하는 습성이 골수에 밴 나라라고 기록했다. 구제불능의 사대주의 나라로 낙인찍은 것이다. 중화사상의 긴 터널을 뚫고 나와 미국의 가치를 이해하고, 미국과의 동맹체제로 전환한 것은 70년 전의 일이다.

 

문재인 정부 시절 중국에 약속한 것으로 알려진 3불 정책의 핵심 내용.
문재인 정부 시절 중국에 약속한 것으로 알려진 3불 정책의 핵심 내용.

 

그런데 한미동맹 체제가 굳건하게 자리 잡았다고 믿었던 한국이 한미동맹 체제에 이탈하여 중국 의존 체제로 나갈 수 있음을 확인시켜준 것은 좌파 정부였다. 노무현 정부의 동북아 균형자론, 문재인 정부의 3() 1() 정책의 등장은 교조적인 신중화 사상이 언제든 한국에서 재작동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근거다.

만약 내년 봄 총선에서 중국공산당과의 이념 공조 정책을 옹호하는 야당이 승리하면 제2, 3의 싱하이밍 류의 공세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 무엇을 할 것인가?

윤석열 정부가 미국, 일본과의 관계 정상화를 추구한 것은 미국의 글로벌 정책과 연계해서 볼 때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중국공산당의 제국주의적 본성의 1차 표적이 된 한국은 국가 생존을 위해 한미일 자유민주체제 공조를 강화하고, 한미동맹을 더욱 굳건히 해야 할 때가 되었다.

보다 심화된 한미동맹을 주장하면 중국에 깊이 연동된 한국 경제의 속사정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커진다. 한국은 중국이 개혁 개방을 통해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과실을 가장 많이 향유한 나라였다. 미중 신냉전의 여파로 중국 경제가 침체되면서 한국의 수출도 크게 부진에 빠진 것이 그 증거다.

중국 경제 침체로 인한 리스크는 경제가 살아나고 있는 일본과 미국과의 경제 공조로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중국이 부상하는 동안 잃어버린 30을 경험한 일본은 아베노믹스를 통해 경제 회생을 위한 기반을 다졌다. 게다가 미국의 대중(對中) 견제책인 인도-태평양 구상을 주도하면서 반도체 산업을 중심으로 해외 자본 유치에 성공해 건실한 성장을 하고 있다.

이미 여러 한국의 벤처 기업과 중견 기업들이 일본 쪽으로 사업 영역을 돌려 성공하고 있다. 일본과 경제협력을 통해 중국에서의 부진을 만회할 수 있도록 인식과 발상의 전환이 절실한 때다.

또한 미국 입장에서 볼 때 한국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전략적 가치를 지닌 국가임을 적극 부각시켜야 한다. 현재 한국이 보유하고 있는 IT, 온라인 분야의 기술, 반도체와 배터리 기술, 생명공학과 의학 분야 기술, 로봇 관련 기술 등은 미국 입장에서도 반드시 필요한 핵심 요소다.

한국과 같은 경제력과 군사력을 보유한 핵심 국가가 중공의 표적이 되어 미국의 대중 포위망에서 이탈할 경우 미국의 국익에 치명적 손상을 입을 수도 있다. 한국은 미국의 군사·경제·정치·이념 동맹으로서 필수불가결한 기술과 자본과 가치를 지닌 나라로 업그레이드를 하면 미국도 손쉽게 한미 동맹을 포기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중 신냉전 시대가 도래하면서 한국은 미국의 대중국 포위전략의 최전선이 되었다. 이런 국제정세의 변화는 한국 입장에서 보면 위기이자 기회다. 전통 우방국인 미국 일본과의 동맹을 강화하여 위기를 극복하고 기회를 잘 활용하여 한국은 미국 안보에 반드시 필요한 파트너라는 인식을 심어줄 때 한미동맹의 미래는 낙관적으로 인식이 바뀔 수도 있을 것이다.

 

김용삼 대기자 dragon003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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