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4·19 희생자 묘역 참배·사과 후 두달만
30세에 입적, 1965년 이 전대통령 임종 지켜 
이 전 대통령 기념사업회에서 부친 명예회복 앞장

이승만 전 대통령 양자인 이인수 박사가 지난 9월1일 서울 강북구 수유동 4·19 묘역 유영봉안소를 참배하고 4·19 혁명 희생자와 유가족에 사과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승만 전 대통령 양자인 이인수 박사가 지난 9월1일 서울 강북구 수유동 4·19 묘역 유영봉안소를 참배하고 4·19 혁명 희생자와 유가족에 사과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승만 전 대통령의 양아들 이인수 박사가 1일 별세했다. 향년 92세.

이승만건국대통령기념사업회는 이날 "이승만 전 대통령의 아드님이신 이인수 박사가 1일 오후 6시53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영면하셨다"며 "고인은 63년간 한결같이 '아버님 선양’에 진력하셨다"고 밝혔다.

이 박사의 빈소는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4일 오전이며 장지는 충청북도 국립괴산호국원으로 알려졌다. 유족으로는 부인 조혜자 여사와 두 아들 병구·병조씨가 있다.

1931년 경의 의정부 태생인 이인수 박사는 이 전 대통령의 하와이 체류 시절 30세의 나이에 양자로 입적됐다. 1961년 11월 전주이씨(李氏) 문중의 결정이었다. 

당시 이 박사는 대통령의 연세(당시 86세)가 많으니 대학 졸업자에 영어를 할 줄 알아야 하고, 미혼이며 가정교육이 바른 집안이어야 한다는 조건에 딱 들어맞았다.

또한 양녕대군의 16대손인 이 대통령과 계대(系代)가 맞는 17대손이기도 했다.

이 박사는 양자로 선택된 후 모두 세 차례 하와이를 찾아 아버지 이 전 대통령을 모셨다. 

1961년 12월 13일부터 이듬해 3월 17일, 1964년 1월 28일부터 4월 2일, 다시 1965년 7월 4일 마우나라니 요양병원을 찾아 7월 19일 이 전 대통령의 임종을 지켰다.

이 박사는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뉴욕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1∼1993년 명지대 법정대학장을 지냈으며 1996년부터 이 전 대통령 기념사업회에서 활동하며 부친의 명예 회복에 힘썼다.

이 박사는 지난 2011년 4·19 혁명 희생자 묘역을 참배하고 사과문을 발표하려 했으나 희생자 단체 측 저지로 무산된 바 있다.

이후 4·19 혁명 63년 만인 올해 9월 1일 이 전 대통령 유족으로는 처음으로 서울 강북구 수유동 4·19 묘역을 찾아 참배했다.

당시 이 박사는 참배를 마친 뒤 "이승만 대통령의 아들로서 63년 만에 4·19 민주 영령들에게 참배하고 명복을 빌었다. 이 자리를 통해 4·19 혁명 희생자와 유가족 여러분께 깊은 위로와 함께 사과의 말씀을 전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낭독했다.

이 박사는 또 "오늘 제 참배와 사과에 대해 항상 국민을 사랑하셨던 아버님께서도 '참 잘하였노라' 기뻐하실 것"이라며 "오늘 참배가 국민 모두의 통합과 화해를 도모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문무일 이승만건국대통령기념사업회 사무총장은 "이 박사는 생전에 이 전 대통령의 기념관과 동상 건립을 꼭 해내야 한다는 것을 유언처럼 강조하셨다"고 전했다. 

김경동 기자 weloveyou@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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