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대한민국 제2의 민간 항공사, 아시아나항공이 출범하고 2년뒤인 1990년 김포~도쿄를 시작으로 국제선에서 대항항공과 경쟁을 펼친 이래 아시아나의 국제선 항공권 가격이 대한항공보다 비싼 적은 거의 없었다.

일본이나 동남아를 오가는 단거리 노선은 출발 시간대나 여객기 상황 등에 따라 아시아나가 비싼 적이 간혹은 있었지만, 미국 등 북미를 오가는 장거리 항공권은 지난 30여년간 언제나 아시아나가 대한항공 보다 수십만원 저렴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난해 봄이 지나 코로나 팬데믹이 잦아들고 해외 여행수요가 급증하면서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일이 벌어졌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의 항공권 가격 역전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아시아나가 경쟁노선에서 대한항공 보다 항공권 가격을 비싸게 받을 수 없었던 것은 후발주자로서의 일종의 숙명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지난해 여름부터 아시아나 항공권이 더 비싼 경우가 종중 등장하더니 이제는 아시아나 항공권이 전체적으로 대한항공 보다 비싼 것이 일반적이다.

11월4일 오전에 인천공항을 출발해 미국 뉴욕의 JFK공항에 도착하는 항공권의 가격을 알아보기 위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홈페이지 티켓발매 코너를 살펴봤다.

4일 오전 10시 인천공항을 출발하는 대항항공 여객기의 이코노미 편도 티켓가격은 1,357,700원이었다. 이에비해 오전 9시40분 인천공항을 이륙하는 아시아나의 이코노미 편도 가격은 7만원 가량 비싼 1,429,000원이었다. 경유지가 없고 비행시간도 같았다.

같은 이코노미 등급이지만 한 단계 더 비싼 티켓은 대한항공이 2,067,700원, 아시아나가 2,179,700원이었다.

대한항공이 정부, 산업은행의 권유에 따라 아시아나항공의 인수에 나서기로 한 것은 2020년 11월이었다. 아직까지 양사간의 합병은 공식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아시아나는 더 이상 대한항공을 의식한 가격경쟁을 하지 않게된 것이다.

양사의 경쟁에 따른 소비자의 이익은 코로나 이전시기 인천~뉴욕과 인천~워싱턴 DC의 항공권 가격만 봐도 알 수 있다.

인천-뉴욕 노선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가 동시에 취항하고 있지만 워싱턴은 대한항공 노선만 있다. 인천에서 뉴욕과 워싱턴은 거의 비슷한 거리다.

하지만 항공권 가격은 왕복권 기준으로 뉴욕이 80만원 정도나 저렴했다. 뉴욕노선에서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의 경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한항공의 아시아나 인수 합병이 마무리되면 독점 노선은 더욱 늘어나게 된다. 더구나 두 항공사 소속의 저가 항공사인 진에어와 에어부산, 에어서울까지 합치면 상황은 심각하다.

지난해 공정거래위원회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에 조건부 승인을 내리면서 “향후 운임 인상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해 합병 후 10년간 가격 규제를 조건으로 걸었다.

공정위는 합병후 회사가 점유율 78~100%를 차지하는 미주 노선은 평균 26.3%, 유럽 노선은 11.5% 가격 인상을 예상했다. 합병 후 가장 유력한 경쟁자(아시아나)가 사라져 가격 경쟁 유인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일본 노선의 경우 두 항공사가 합쳐지면 점유율이 57.3%에 달하고 중국은 45.7%,저가 항공사가 많이 취항하고 있는 동남아 노선도 42.9%로 나타났다.

이에따라 공정위는 대한항공의 독과점 우려(경쟁 제한성)가 있는 노선에서는 합병 완료 시점부터 10년간, 2019년 평균 운임 대비 물가 상승률 이상으로 인상하는 것을 금지했다. 단, 다른 항공사가 해당 노선에 신규 진입해 경쟁 제한성이 해소되면 10년 이내라도 규제는 풀린다.

그동안 대한항공의 아시아나 합병에 가장 큰 걸림돌은 EU 경쟁당국이 제기한 아시아나 화물부문사업 처분이었다.

코로나시기에 대부분 항공사들이 여객 부문에서 적자를 보고 화물부문의 이익으로 버텼던 만큼, 아시아나 화물부문 매각이 빈껍데기만 남겨서 인수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에 더 나아가 주주들에 대한 배임이 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 하지만 결국 대항항공과 아시아나의 이사회가 화물부문 매각을 결의함으로써 양사의 합병추진에 가장 큰 장애물이 없어진 것이다.

2020년 HDC현대산업개발의 아시아나 인수가 무산된 이후 주 채권 은행인 산업은행이 내놓은 해법이 대한항공의 아시아나 인수였다. 당시 대한항공의 조원태 회장은 사모펀드 KCGI와 반도건설 등으로 구성된 주주연합과 경영권을 놓고 치열한 지분 확보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산업은행이 제3자 유상 배정 방식으로 10%가량의 지분을 획득하면서 경영권 분쟁에 개입한 결과를 낳은 것이다. 조원태 회장으로서는 아시아나 항공을 선물로 받은 것이나 다름없는 특혜였다.

현재 일본에는 국적 항공사로 JAL과 ANA가 있다. 과거 여러차례 경영 위기에 빠졌던 JAL은 2010년에 이르러 심각한 경영위기에 처하자 JAL의 국제선 부문을 ANA가 흡수하는 계획이 검토됐다. 국가 대표 항공사는 하나면 된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독점에 따른 폐해를 우려한 국가적 결단으로 JAL에 대한 대대적인 경영개선 작업이 이루어졌고, 13개월 만에 흑자로 전환, 2013년 3월에는 역대 최고의 매출을 기록하기도 했다.

대한항공측은 “가격 규제가 적용되는 노선은 서울~뉴욕 등 핵심 노선이라 경쟁 항공사 진입이 유력하다”며 “경쟁이 이어져 큰 가격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이나 일본 등의 경쟁 항공사가 있기 때문에 가격을 함부로 올릴 수 없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대한항공이 말하지 않은 것이 있다. 세계인들의 항공기탑승패턴, 특히 한국 소비자들의 항공권 소비경향은 몇십만원이 비싸더라도 외국항공사 보다는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 같은 국적기를 선호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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