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선균(48)씨의 마약 투약 사건의 실마리가 풀리고 있다. 1차적 윤곽이 드러났다고 볼 수 있다.

마약 투약 혐의를 받는 배우 이선균씨가 4일 오후 조사를 받기 위해 인천논현경찰서에 있는 인천경찰청 마약범죄수사계에 재출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마약 투약 혐의를 받는 배우 이선균씨가 4일 오후 조사를 받기 위해 인천논현경찰서에 있는 인천경찰청 마약범죄수사계에 재출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언론 보도를 통해 실명 공개된 이후 드러난 이씨의 언행은 그동안 앞뒤가 맞지 않았다. 한마디로 의문투성이었다. 국민에게 ‘사과’하고 ‘반성’한다면서도 마약 투약 사실에 대해서는 시인하지 않는 이중적 태도를 보였다. 마약을 투약하지 않았다면 반성할 필요가 없다. 잘못된 첩보로 자신을 수사 선상에 올림으로써 치명적인 명예훼손을 가한 경찰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게 합리적인 대응이다. 하지만 이씨는 경찰 수사에 성실하게 응하겠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마약인 줄 몰랐다”는 이선균의 진술, 그를 피의자가 아니라 피해자로 전환시키고 있어

더욱이 이씨는 자신에게 마약을 제공한 G유흥업소 실장인 A(29·여)씨에게 3억5천만원을 갈취당했다고 고소한 상태이다. 마약을 하지 않았다면, A씨가 협박을 해도 돈을 줄 필요가 없다. 구린 구석이 있기 때문에 갈취당했다고 봐야 한다. 하지만 이씨의 언행에는 뭔가 억울하다는 느낌이 배여 있었다.

이씨가 지난 4일 A씨에게 속아서 마약류를 투약하게 됐다고 밝힌 것은 그동안의 의문점을 대부분 해소하면서 사건을 새로운 국면으로 전개시키고 있다. 이씨 사건은 톱스타의 일탈에 의한 마약 복용 범죄가 아니라, 대치동 마약 음료 사건과 유사한 성격의 신종 마약 범죄로 볼 수 있다. 이씨 진술이 사실이라면 이씨는 범죄 피의자가 아니라 범죄 피해자로 신분이 바뀔 수도 있다.

이선균, 4일 경찰조사에서 ‘마약 투약 혐의’ 인정하는 대신 ‘고의성’을 전면 부인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상 ‘마약임을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투약하는 것’은 처벌 대상이 아니다. 대치동 학원가에서 집중력과 기억력을 향상시키는 음료라는 설명을 듣고 마약음료를 마신 학생이나 학부모도 형사처벌을 받지 않았다. 범죄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범인들은 학부모들에게 전화를 걸어서 “자녀가 마약을 마셨는데 돈을 주지 않으면 경찰에 신고하겠다”는 식으로 협박을 했다.

지난 4월 대치동 학원가에서 시음 행사 중인 음료수를 마신 고등학생 자녀의 몸에 이상이 생겼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사진=연합뉴스TV 캡처]
지난 4월 대치동 학원가에서 시음 행사 중인 음료수를 마신 고등학생 자녀의 몸에 이상이 생겼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사진=연합뉴스TV 캡처]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상 대마·향정 혐의를 받는 이씨는 4일 오후 인천경찰청 마약범죄수사계에서 받은 2차 소환 조사에서 "유흥업소 실장 A(29·여)씨에게 속았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면서 "A씨가 나를 속이고 무언가를 줬다"며 "마약인 줄 몰랐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약 투약 혐의를 인정하면서도 고의성은 전면 부인하는 진술이다.

정황 증거 1= 이선균, 마약 투약 협박 사실을 자발적으로 공개

이씨의 이 같은 진술을 뒷받침해주는 정황증거가 적지 않다. 첫째, 이씨가 지난달 자산의 마약 투약 의혹이 터져나오자 변호인을 통해 “이번 사건과 관련해 A씨에게 협박당했고 3억5천만원을 뜯겼다. A씨와 성명 미상의 인물 B씨를 공갈 혐의로 고소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이는 이씨가 사실상 마약 투약 사실을 시인하는 발언이라는 점에서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졌다. 경찰에 출두도 하기 전에 마약 투약 사실을 인정하는 피의자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씨가 4일 밝힌 것처럼 A씨에게 속아서 마약류를 투약했고 나중에 A씨가 이를 빌미로 거액을 갈취했다면, 이씨는 피의자가 아니라 피해자가 된다.

더욱이 A씨는 “나와 이씨의 관계를 의심한 B씨로부터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나도 협박당했다”면서도 “협박한 인물이 정확히 누구인지는 모른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이씨에게 받은 돈은 3억원이고 일부 금액은 B씨에게 전달됐다는 입장이다. A씨의 진술이 사실이라면, 이씨는 거짓말로 유명인을 속여서 마약류를 투약하게 한 뒤, 이를 빌미로 협박해 거액을 뜯어내는 ‘신종 마약 협박 범죄’에 걸려든 셈이다.

정황 증거 2= 모발 검사에서 마약 음성 반응 나와

둘째, 이씨가 소변이나 모발 검사에서 마약 음성 반응을 보였다는 것은 8~10개월 동안 마약류를 투약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이는 이씨가 자발적인 중독자가 아닐 가능성을 시사한다.

인천경찰청 마약범죄수사계는 지난달 28일 이씨에 대한 첫 경찰 조사에서 채취한 모발 100여개에 대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정밀감정에서 ‘음성’ 결과가 나왔다고 지난 3일 밝혔다. 경찰이 채취한 이씨의 모발 길이는 8~10cm이다. 모발 1cm가 자라는 데 1 개월이 걸리므로, 최소 8개월 동안 이 씨는 대마나 향정을 투약한 적이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A씨의 속임수에 넘어가 마약류를 투약했다가 A씨의 협박을 받고 나서야 마약 투약 사실을 인지했다는 게 이씨의 새로운 진술인 셈이다. 경찰은 이씨의 체모 검사를 통해 마약 투약 사실을 입증할 계획이다. 체모의 경우 성장 속도가 늦어 장기간 동안 마약 성분을 내포하고 있을 확률이 높다. 박유천의 경우도 모발 검사에서 음성 판정을 받았으나 체모 검사에서 양성이 나왔다.

정황 증거 3= SNS 통한 마약 협박 조직 가능성 대두

셋째, 소셜 계정을 통한 ‘마약 협박 범죄’가 개입된 정황이 농후하다는 점도 이씨가 조직적인 범죄에 말려들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한다.

이씨는 자신의 마약 투약 의혹이 언론에 보도되자 변호인을 통해 자발적으로 A씨에게 3억5천만원을 갈취당했다고 고소하고 성명 미상의 B씨도 공갈 혐의로 고소하면서, A씨와 B씨가 짜고 자신을 협박했을 가능성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즉 A씨와 B씨는 공범이라는 이야기이다.

A씨는 마약투약 등 전과 6범이라고 한다. 자신의 집을 이씨의 마약 투약 장소로 제공했다고 경찰에 진술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따라서 A씨는 부유층을 상대로 한 회원제인 G유흥업소에서 평소 알던 의사에게 공급받은 마약류를 이씨에게 마약이 아닌 다른 물질로 소개하면서 투약하도록 유도했다가 나중에 이를 빌미로 협박해 고수익을 올린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B씨가 배후 인물일 가능성도 주목된다. A씨는 B씨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SNS를 통해 접근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혀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이씨가 A씨를 통해 마약을 투약한 사실을 파악하고 있었는지가 의문이다. A씨가 거짓말로 속여서 마약을 투약하게 만들면 이를 빌미로 협박해 거액을 뜯어내는 범죄 조직이 존재하고, B가 그러한 범죄 조직의 일원일 수도 있는 것이다.

대치동 마약음료 협박 사건도 철저한 신종 조직 범죄...보이스피싱 조직의 신종 사업 모델?

대치동 마약음료 협박 사건의 경우도 철저한 신종 조직 범죄임이 수사 결과 드러났다. 주범인 길모(26)씨는 중국에 있는 보이스피싱 총책 등과 함께 마약음료를 제조한 뒤 미성년자들에게 투약하게 하고 이를 빌미로 금품을 갈취하려 했다. 김모(39)씨는 변작중계기를 사용해 중국 인터넷 전화번호를 국내번호로 바꿔 협박 전화를 도운 혐의이다. 박모(36)씨는 ‘던지기 수법’으로 필로폰 10g을 받아 길씨가 전달하도록 한 혐의이고, 보이스피싱 모집책으로 활동한 이모(41)씨는 범죄단체 가입·활동 등 혐의이다.

이들은 마약음료 100병을 사전 제조해 지난 4월 서울 강남 학원가 일대에서 음료 시음회를 열고 학생들에게 ‘집중력 강화’ 음료라며 18병을 나눠준 것으로 조사됐다. 피해자는 미성년자 13명과 학부모 6명이다. 마약음료 1통엔 통상적인 필로폰 1회 투약분인 0.03g의 3배가 넘는 양인 0.1g이 담긴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4월 17일 오전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에서 열린 강남 학원가 마약음료 사건 중간수사 브리핑에 압수된 마약음료와 설문지 등이 놓여 있다. 음료수 병에는 도용으로 추정되는 유명 제약사의 상호와 ‘기억력 상승 집중력 강화 메가 ADHD' 가 적혀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4월 17일 오전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에서 열린 강남 학원가 마약음료 사건 중간수사 브리핑에 압수된 마약음료와 설문지 등이 놓여 있다. 음료수 병에는 도용으로 추정되는 유명 제약사의 상호와 ‘기억력 상승 집중력 강화 메가 ADHD' 가 적혀 있다. [사진=연합뉴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6부(부장판사 정진아)는 지난달 26일 1심에서 중형을 선고했다. 무고한 청소년 등을 마약 범죄자로 끌어들이고 이를 빌미로 협박한 것은 중대한 흉악범죄라고 판단한 것이다. 길씨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하고 범죄수익금 250만원의 추징을 명령했다. 김씨에게는 징역 8년, 박씨에게는 징역 10년을 선고하고 추징금 각각 4676만원과 1억6050만원을 명령했다. 아울러 보이스피싱 모집책으로 활동한 혐의로 기소된 이씨에게는 징역 7년을 선고했다.

대치동 마약음료 사건은 보이스피싱 조직이 기획...이선균 사건은 SNS 협박 조직이 연루돼?

대치동 마약음료 사건은 중국과 한국을 기반으로 한 보이스피싱 조직이 사전 모의한 사건이라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통상적인 방법으로 돈을 갈취하기 어려워진 보이스피싱 조직이 마약 범죄자들과 결탁해 새로운 범죄를 기획하고 있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이씨가 A씨에게 건네 받은 물질이 마약인 줄 모르고 투약했다면, 대치동 마약음료 사건의 학생들처럼 피해자가 된다. 반면 처음에는 몰랐지만 나중에는 알고도 마약류를 투약했다면 처벌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씨 사건에서 드러난 신종범죄에 철퇴를 내리고 철저한 예방대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유명인들을 상대로 마약 투약을 유도한 뒤 이를 빌미로 거액을 뜯어내는 범죄조직이 있다면 발본색원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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