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총선 승리를 겨냥한 국민의힘 혁신물결이 인요한의 ‘영남 중진 험지 출마론’과 이준석의 ‘신당론’이 맞대결하는 양상으로 펼쳐지고 있다. 한 쪽이 커지면 다른 한 쪽은 위축될 수밖에 없는 ‘제로섬 게임’의 법칙이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이 4일 오후 부산 경성대학교에서 열린 이준석 전 대표, 이언주 전 의원이 진행하는 토크콘서트에 참석한 뒤 자리를 뜨고 있다. 이날 인요한 혁신위원장은 1시간 30분가량 진행된 토크콘서트를 지켜보고 자리를 떠났다. 이 전 대표와 별도의 대화는 없었다. [사진=연합뉴스]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이 4일 오후 부산 경성대학교에서 열린 이준석 전 대표, 이언주 전 의원이 진행하는 토크콘서트에 참석한 뒤 자리를 뜨고 있다. 이날 인요한 혁신위원장은 1시간 30분가량 진행된 토크콘서트를 지켜보고 자리를 떠났다. 이 전 대표와 별도의 대화는 없었다. [사진=연합뉴스]

인요한 ‘권고안’과 이준석 ‘신당론’ 간의 대결에는 ‘제로섬 게임’ 법칙이 작동

즉 다수의 국민의힘 중진들이 영남이라는 기득권을 포기하고 수도권에서 출사표를 던지거나 불출마 선언을 한다면 정치권 이슈를 빨아들이는 태풍의 눈으로 부상할 것으로 관측되는 반면, 이준석의 신당 창당 행보에 대한 대중적 관심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지도부와 친윤 인사들이 영남권 공천을 받아 기득권을 지키는 데 성공하는 방향으로 사태가 흘러간다면, 국민의힘을 공격하는 이준석의 신당 창당 작업이 보수 혁신의 중심축으로 평가받는 역설적 현상이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

당 지도부, 친윤 인사, 영남 중진 등은 40여명...총선이슈 빨아들이는 ‘태풍의 눈’ 될까?

인요한 국민의 혁신위원장이 권고한 영남 중진 험지 출마론은 당 지도부와 친윤 인사들로 그 대상을 확대하고 있다. 공천만 받으면 당선되는 ‘텃밭’인 영남을 지역 기반으로 한 당 지도부 및 친윤 인사들이 불출마하거나 치열한 전쟁터인 수도권 출마에 나설 경우, 영남지역은 초유의 ‘대규모 새피 수혈’이 이뤄질 수밖에 없다. 아울러 지도부와 친윤 인사들이 총선 승리를 위해 정치 생명을 걸고 서울이나 경기지역에 출마한다면, 보수정당 역사상 찾아보기 어려운 동시다발적 ‘정치 혁신’이 실현되는 셈이다.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은 지난 3일 전체회의를 마친 뒤 국회의원 정수 10% 감축, 불체포특권 전면 포기 등의 공식 혁신 안건과는 별도의 권고안을 발표했다. 그 권고안이 혁신 안건보다 더 파괴력 있는 내용이었다.

인 위원장은 ‘영남 중진 험지 출마론’에 이어 당 지도부와 친윤계 인사들의 희생 또는 솔선수범을 요구하고 나섰다. “당 지도부 및 중진 의원, 대통령과 가까이 지내는 의원들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거나 아니면 수도권 지역에 어려운 곳에 와서 출마하는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면서 “과거엔 국민이 희생하고 정치하는 분들은 많은 이득을 받았는데, 이제는 국민에게 모든 걸 돌려주고 정치인이 결단을 내려 희생하는 새로운 길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국민의힘과 국가가 위기에 처해 있고,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희생을 기반으로 한 결단이 필요하다는 설명이었다. 단 이 같은 발언은 의결된 혁신안이 아니라 인 위원장의 정치적 권고라는 게 혁신위의 해석이다.

인요한의 메시지= 친윤과 영남 중진은 혁신의 ‘대상’ 아니라 ‘주체’

김기현 대표와 윤재옥 원내대표 등 당 지도부,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핵심 관계자)’으로 불려온 권성동·장제원·이철규 의원, 박대출 전 정책위의장 등 영남권 3선 이상 중진들을 포함한 40여명이 수도권 출마나 불출마 선언을 해야 한다는 게 인 위원장의 판단인 것으로 분석된다.

주목할 대목은 인 위원장이 김 대표 등을 혁신의 대상으로 규정한 게 아니라, 혁신의 자발적 주체로 지목했다는 점이다. 불출마 선언 압박보다는 수도권 등 험지 출마론에 무게가 더 실려있기 때문이다.

혁신위는 제안할 계획 없는데, 김기현 대표는 “혁신위가 제안해 오면 검토할 것”

그러나 당사자들의 반응은 아직 미온적이다. 김기현 대표는 3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혁신위와 사전에 의논한 바 없다”면서 “혁신위가 종합적으로 제안해 오면 정식 논의 기구와 절차를 통해 종합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인 위원장의 권고안이 국민의힘의 내년 총선 승리에 어떤 효과를 줄 것인지에 대한 공식적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다분히 방어적인 태도라는 지적이다.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포시즌호텔에서 대한민국 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주최로 열린 제2차 공동회장단 회의에서 주요 내빈들이 국민 의례를 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 조재구 대표회장,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사진=연합뉴스]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포시즌호텔에서 대한민국 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주최로 열린 제2차 공동회장단 회의에서 주요 내빈들이 국민 의례를 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 조재구 대표회장,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사진=연합뉴스]

혁신위가 지도부 수도권 출마안을 당에 공식 제안할 가능성은 없다. 인 위원장의 개인적 권고안 형식을 취하고 있는 탓이다. 인 위원장은 영남 중진 및 친윤 인사 등의 수도권 출마 등을 공식 안건으로 채택하려 했으나, 6대 6으로 찬반이 맞서 불발됐다.

지난 대선 당시 윤석열 후보 수행실장을 맡았던 ‘친윤’ 이용 의원은 불출마나 험지인 경기도 하남 출마 등을 자원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인 위원장이 지목한 대상은 아니다. 이용 의원은 젊은 비례대표 초선 의원이기 때문이다.

‘친윤 젊은 피’의 출사표와 ‘TK 물갈이’ 맞물리나

인 위원장은 5일 MBN 인터뷰에서 “오늘도 촉구한다. 국민들이 기대를 가지고 기다리고 있다”며 “몇 분이라도 결단을 해 시작하면 분위기가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서너 명이라도 수도권 출마나 불출마 릴레이 선언에 나선다면, 국민에게 감동을 주는 정치를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다. 40여명의 영남 중진 및 친윤 인사들 중 상당수가 자기 희생적 결단에 동참한다면 ‘영남권 새피 수혈’이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성과도 예상된다.

특히 부산경남(PK)보다 대구경북(TK) 지역의 물갈이가 더욱 큰 정치적 파장을 낳을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 공천이 곧 당선으로 연결되는 TK지역에 새로운 인물을 대거 기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석비서관부터 행정관에 이르는 대통령실 참모진 20여명이 이미 내년 총선을 겨냥해 출사표를 던지고 있어 ‘친윤 젊은피’의 출사표와 TK지역 물갈이는 내년 총선 이슈 선점효과가 막대할 것으로 보인다.

이준석의 시나리오= 국민의힘 ‘근본적 변화’ 없으면 12월 말 신당 창당 나선다

이준석 전 대표가 탈당 및 신당 창당 여부를 결정할 최종 변수로 국민의힘의 ‘근본적 변화’를 꼽은 것도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이 전 대표는 지난 4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국민의힘이 근본적으로 변화하지 않을 경우, 12월 후반 탈당하겠다”고 밝혔다.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이 4일 오후 부산 경성대학교에서 열린 이준석 전 대표, 이언주 전 의원이 진행하는 토크콘서트에 참석해 있다. 이날 인요한 혁신위원장은 1시간 30분가량 진행된 토크콘서트를 지켜보고 자리를 떠났다. 이 전 대표와 별도의 대화는 없었다. 이 전대표는 인 위원장에게 영어로 응대하며 거리를 두는 모습을 보였다. [사진=연합뉴스]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이 4일 오후 부산 경성대학교에서 열린 이준석 전 대표, 이언주 전 의원이 진행하는 토크콘서트에 참석해 있다. 이날 인요한 혁신위원장은 1시간 30분가량 진행된 토크콘서트를 지켜보고 자리를 떠났다. 이 전 대표와 별도의 대화는 없었다. 이 전대표는 인 위원장에게 영어로 응대하며 거리를 두는 모습을 보였다. [사진=연합뉴스]

이 전 대표는 ‘인요한 혁신위’가 친윤계 의원들의 불출마나 수도권 험지 출마를 요구한 데 대해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완패로 물러났던 이철규 전 사무총장을 인재영입위원장으로 재등장시키는 것이 지금 국민의힘의 현실이다”면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수고하세요’뿐이다”고 냉소적으로 논평했다. 인 위원장의 권고안이 김기현 대표 등 지도부에 의해 수용될 가능성이 없다고 보는 것이다.

그는 “내일 총선을 한다면, 국민의힘은 100석도 위험하다고 확신한다. 대선과 지방선거를 연이어 이긴 정당을 1년 반 만에 폐허를 만든 사람들이다”면서 “나는 지금 국민의힘을 이끄는 세력들을 시한부로 보고 있다. 선거를 통해 사라질 것이다”고 단언했다.

이 전 대표는 “여권 내부의 근본적인 변화가 없다면, 신당 창당인가”라는 질문에 “그렇다”면서 “(출마할 경우 지역구는) 내 정치 인생에서 가장 의미가 큰 곳으로 나갈 것이다. 서울 노원도 나에게는 의미가 큰 지역구다. 다만 아직 최종 결정을 내리지는 못했다”고 밝혔다.

국민힘의 ‘근본적 변화’ 여부를 판단하는 주체는 ‘이준석’이 아니라 ‘국민’

가장 중요한 것은 ‘근본적 변화’ 여부를 판단하는 주체는 이 전 대표가 아니라, 국민이라는 점이다. 국민의힘이 근본적 변화를 하고 있다고 국민이 판단한다면, 이 전 대표는 국민의힘을 나갈 수 없다는 이야기이다.

인 위원장의 친윤 인사와 영남 중진의 자기희생적 수도권 출마론이 현실화된다면, 국민은 국민의힘이 근본적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고 평가할 것이고, 그럴 경우 이준석 신당은 동력을 상실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인 위원장의 권고안은 혁신성 면에서 매력적이지만, 실현 가능성은 낮다는 게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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