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정찰위성 3차 발사. 2023.11.22(사진=연합뉴스)
북한 정찰위성 3차 발사. 2023.11.22(사진=연합뉴스)

11월 21일 군사정찰위성 발사를 전후한 북한의 움직임은 조밀하게 짜여진 시나리오에 따라 펼쳐진 한 편의 '기만·기습·선전' 드라마였다. 지난 5월과 8월에 정찰위성을 발사했다가 실패했던 북한이 11월 22일부터 12월 1일 사이에 군사정찰위성을 발사하겠다고 일본 해상보안청에 알려준 것은 11월 21일이었다. 서해 2곳, 필리핀 동쪽 태평상 1곳 등 낙하물 추락 예상 구역 세 곳도 알려주었다. 그래놓고는 스스로 예고한 발사 기간을 어기고 발표 당일인 21일 밤에 발사를 강행했다.

낙하물 추락 예상 지점을 항행하는 선박들의 안전은 안중에도 없었다. 발사 직후 합참과 국정원 그리고 미국의 우주군사령부는 이 위성이 500km 저궤도에 진입한 것으로 평가했고, 미 우주사령부는 하루에 지구를 15회 정도 돌면서 매일 2~4회 한반도 상공을 지날 것으로 예상했다. 야간 정찰이 불가한 광학카메라를 부착한 위성일 것이기에 한반도를 실제로 정찰할 수 있는 것은 하루에 1~2회 정도일 것이다.

  어쨌든 이 한 편의 도발 드라마로 인해  9·19 남북군사합의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고, 북한은 2021년 1월 제8차 당대회에서 제시했던 5대 전략과제 중의 하나인 '15,000km 사정권 안의 타격명중율 제고'를 달성했다고 큰 소리를 칠 것이다. 또한, 이 드라마는 한국에게 크고 작은 안보과제들을 안겼는데, '나홀로 코메디'로 남은 1991년 한반도비핵화 공동선언을 정식 폐기하는 문제도 그 중 하나다.

한국에는 정부가 대북 억제조치를 취하려고만 하면 '위기 조장,' '경제 파탄,' '북풍몰이' 등의 표현을 사용하면서 막아서는 무책임한 인사들이 적지 않다. 이들의 아우성에 떠밀려 유의미한 대응조치들을 강구하지 못한다면 윤석열 정부가 공약해온 '힘의 의한 평화'는 물거품이 되고 남북관계는 대한민국은 스스로의 생존을 북한의 자비에만 의존해야 하는 '포식자-피식자' 관계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19일 저녁 평양 5.1 경기장에서 열린 '빛나는 조국'을 관람한 뒤 환호하는 평양 시민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2018.9.19(사진=연합뉴스, 편집=펜앤드마이크)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19일 저녁 평양 5.1 경기장에서 열린 '빛나는 조국'을 관람한 뒤 환호하는 평양 시민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2018.9.19(사진=연합뉴스, 편집=펜앤드마이크)

9·19 군사합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다

발사 다음날인 22일 평양은 조선중앙TV와 노동신문을 통해 정찰위성 '만리경-1'호를 탑재한 신형위성운반로케트 '천리마-1'형이 성공적으로 발사되었다고 발표했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만 리를 굽어보는 ‘눈’과 만 리를 때리는 강력한 ‘주먹’을 다 함께 수중에 틀어쥐었다”고 선언했다.

이 발사로 인해 ‘탄도미사일 기술을 이용한 모든 발사’를 금지한 안보리결의 1874호와  2087호는 또다시 무시되었고, 9·19 군사합의도 거듭 유린되었다. 이에 한국 정부는 22일 남북군사합의 중 군사분계선 지역 상공의 공중정찰 활동을 제한한 군사합의 제1조 3항의 효력을 정지시켰다.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폐기가 아닌 일부 효력정지를 결정한 것이다.

그러자 북한은 기다렸다는 둣이 23일 동해상으로 탄도미사일 1발을 발사하고 이어서 군사합의의 '전면 폐기'를 선언해버렸다. 그리고는 “현 정세를 통제불능의 국면으로 몰아간 저들의 무책임하고 엄중한 군사도발에 대해 혹독한 대가를 치러게 하겠다”며 발끈했고, “강력한 무력과 신형 군사장비들을 군사분계 지역에 전진 배치하겠다”고 경고했다. 이렇듯 북한은 국제사회와 한국의 대응을 예견하면서 미리 짜여진 각본에 따라 기습적인 위성 발사, 선전, 군사합의 파기 선언, 책임 전가, 대남 협박 등을 전광석화처럼 이어갔다. 역시 북한은 기만·기습·선전에 강했다. 이 기습작전에 제물로 바쳐진 것이 9·19 남북군사합의였다. 

당연히, 합의 폐기의 책임을 한국에 전가하는 북한의 적반하장은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지금까지 매번 그래왔기 때문이다. 사실 대한민국은 북한이 군사합의 서명 후 지금까지 일상적으로 합의를 위반하는데 대해 진저리를 내고 있었다. 남북은 2018년 '9·19 남북군사합의'를 통해 ‘지상·해상·공중 등 모든 공간에서의 일체의 적대행위 중단’에 약속했지만, 북한은 전혀 이행하지 않았다. 지난 5년간 북한은 해안포 사격, 휴전선 감시초소 총격, 무인기 침투, 미사일 발사 등을 수십차례나 반복했다.

2022년에만 103발의 미사일을 쏘았고, 2023년에도 지금까지 약55발의 미사일 또는 발사체를 쏘았다. 해안포를 개방한 횟수는 3,400회나 된다. 그래서 10월 27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신원식 국방장관은 북한의 위반이 3,600회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그런 가운데서도 백령도, 연평도 등 서북도서에 주둔한 한국 해병대는 합의를 준수하느라고 무거운 포들을 배에 실어 육지로 옮겨서 훈련을 해왔는데, 수송비로만 100억 원 이상을 써야 했다.

1991년 노태우 대통령 남북합의서 서명 사진. 1992년.(사진=국가기록원, 공보처 홍보국 사진담당관, 편집=조주형 기자)
1991년 노태우 대통령 남북합의서 서명 사진. 1992년.(사진=국가기록원, 공보처 홍보국 사진담당관, 편집=조주형 기자)

'나홀로 코메디'로 남아 있는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한국은 당장 북한이 초대형방사포, 전술핵 미사일, 무인기 등을 전진배치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 현재 한국은 북한이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사태로 인하여 미국이 한반도에 개입할 여력을 가지고 있지 못한 것으로 판단한다면 곧바로 전면전 또는 국지전이 발생할 수 있는 상황에 처해 있다.

특히, 서북도서 해역은 북한의 국지전 도발시 가장 위험한 지역이 될 것이다. 때문에 한국군은 서울 북방 지역과 서해방어사령부 및 인천해역방어사령부 해역의 경계태세를 격상하고 국지도발에 즉각 대처할 수 있도록 일선 지휘관들에게 판단권과 실행권을 일임하는 '임무형 지휘 체제'를 재정비해야 한다. 동원예비군 소집 훈련을 실시하고 한국군의 전반적인 기습대응 태세를 점검해보는 것도 필요하다.

북한이 군사합의의 전면 파기를 선언한 이상 한국도 미련을 버리고 정식 폐기 수순을 밟고 즉각적인 공중 감시정찰 재개, 군사훈련 복원, 휴전선 감시초소 추가 설치 등을 추진해야 한다. 기계와 장비에 의존하는 '과학화 경계 체계'를 만능으로 믿고 있다가는 10월 7일 하마스(Hamas)의 기습에 허를 찔린 이스라엘군 처럼 된다는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한다. 차제에 1991년 12월 남북이 서명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에 대한 정식 폐기 절차를 밟아야 한다.

북한이 농축·재처리는 물론 핵무기에 핵독트린까지 갖춘 핵보유국이 된 마당에 한국이 ‘농축 재처리 상호 금지’와 ‘상호 핵무기 생산 금지’에 합의했던 공동선언을 끌어안고 있는 것은 무의미한 '나홀로 코메디'다. 한국은 한반도비핵화 공동선언을 정식 폐기함으로써 주권적 결정과 동맹협의에 따라 언제든 농축·재처리 및 핵무장에 나설 수 있음을 내외에 선포해야 한다.

이번 사태는 대러시아 관계에 있어서 민감한 외교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러시아가 북한에게 우주기술만 제공했을 것으로 보는 것은 곤란하며, 북한이 강조하는 '5대 전략무기 과제'인 극초음속 미사일, 다탄두 유도 기술, 고체연료 ICBM, 핵추진 잠수함, 정찰위성 등과 관련해 이미 상당 수준의 기술을 제공했거나 앞으로 제공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러한 정황과 러시아가 당면 주적인 북한과 미래의 주적인 중국의 배후에 위치한 나라로서 핵군사력과 우주기술에 있어서는 미국과 자웅을 겨루는 초강대국이라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한국이 '지전략적(geostrategic)' 차원에서 대러시아 관계를 관리해나가야 한다. 즉, 한미동맹을 중심에 두되 러시아와의 비적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고난도 외교가 필요하며, 최고 지도자가 노골적으로 러시아를 적대하는 언행을 보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와 함께, 중장기적인 안보과제들도 점검해야 한다. 이미 시작된 남북 '우주경쟁'에서 확고한 우위를 차지할 중장기 플랜을 수립하고 실천하는 일, '강군건설'을 위한 새로운 국방개혁에 착수하는 일, 눈덩이 처럼 커질 북핵 위협으로부터 국가생존을 담보하는 근본대책을 세우는 일 등 많은 과제들이 정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김태우 객원 칼럼니스트.
김태우 객원 칼럼니스트.

김태우, 한국군사문제연구원 핵안보연구실장 / 전 통일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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