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당 내외의 온갖 비판에 대해 일체 대응하지 않는 ‘묵살(默殺)정치’로 일관하고 있다. 김부겸 전 총리와 지난 20일 회동했지만,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다. 현안에 대해 당 원로의 의견을 청취한 뒤 변화와 진전이 없다면 그 만남 자체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김부겸 전 국무총리가 20일 오전 회동을 위해 종로구 해남2빌딩에 들어서며 입장 발표를 준비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김부겸 전 국무총리가 20일 오전 회동을 위해 종로구 해남2빌딩에 들어서며 입장 발표를 준비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세균과 김부겸은 ‘당 통합’과 ‘공정한 공천 관리’ 요구... 이재명은 침묵으로 일관

김 전 총리와 정세균 전 총리가 지난 24일 만나 ‘당내 통합’과 ‘공정한 공천 관리’ 등의 필요성을 제기했지만, 정작 칼자루를 쥐고 있는 이 대표는 아무런 응답이 없다. 이낙연 전 총리가 신당 창당 선언을 하면서 이 대표의 사퇴를 압박하고 있는 데 대해서도 입장 표명이 없다. 친명 그룹 의원들이 개별적으로 나서서 이 전 총리에 대한 인신공격을 퍼붓고 있을 따름이다.

이 대표는 28일 정세균 전 총리와 회동을 할 예정이다. 김 전 총리와 정 전 총리는 이 전 총리와도 함께 만나는 ‘3총리 회동’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분주한 ‘3총리의 행보’는 이 대표에 대한 당내 비판과 사퇴 압력을 일시적으로 차단하는 역할에 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 전 총리와 정 전 총리가 회동을 전후로 발신하는 메시지가 ‘민주당 분열에 대한 우려’로 요약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내년 총선을 앞두고 분열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은 결국 현재 지도부인 이재명 대표 체제에 대한 지지를 전제로 하고 있다. 이 대표 체제를 흔들려는 시도 자체는 설 자리가 좁아지게 된다.

김부겸과 정세균을 연쇄회동하는 이재명... 두 전 총리는 ‘이낙연 신당’에 대한 우려도 표명

이 대표로서는 김 전 총리, 정 전 총리와의 연쇄회동을 갖는게 나쁘지 않은 카드이다. 만나서 밥을 먹고 나면, 두 원로 정치인은 당의 분열에 대한 걱정을 토로하게 마련이다. 분열에 대한 걱정은 이 대표 체제를 지원하는 힘이 되는 반면, 이 대표 사퇴를 요구하는 이 전 총리와 비명계 입장에서는 운신의 폭을 제한하는 요인이 된다.

‘3총리 회동’은 이 대표에게 점점 유리한 정치행사로 변하고 있다는 사실도 주목할 대목이다. 당초 이 전 총리는 신당 창당을 선언하면서 ‘3총리 연대’ 가능성을 시사했다. ‘3총리 연대’가 새로운 반이재명 그룹의 중심축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점쳐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 대표가 지난 20일 김 전 총리를 먼저 만나면서 변화가 감지됐다. 김 전 총리와 정 전 총리는 지난 24일 회동에서 당의 통합을 강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사진=연합뉴스TV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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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총리는 이날 회동 직후 민주당 내 분열상에 대한 우려를 공유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조찬에 동석한 한 야권 관계자는 "두 전 총리는 비명계 공천 학살 논란 그리고 당의 원로인 이낙연 전 대표에 모욕을 주고 공격하는 당내 행태 등에 대해 우려했다"고 전했다. 이 대표의 적극적인 통합 행보를 주문한 셈이다.

단 최근 당내 총선 예비후보 적격성 심사에서 친명계 지역구에 출사표를 던진 원외인사들이 고배를 마시는 등 공천의 불공정성 논란이 불거진 게 통합 저해요인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고 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 전 총리가 추진하는 신당 행보에 대해서도 강한 우려를 표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전 총리와 정 전 총리는 ‘여당이 한동훈 비대위 체제를 수립하는 등 혁신에 나서고 있는 상황에서 민주당도 통합을 통해 혁신을 이뤄야 한다’는 입장에 원칙적인 공감을 했다는 후문이다.

[사진=연합뉴스TV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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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총리 회동 성사되면 ‘이재명 압박’보다 ‘이낙연 힘빼기’ 효과 더 클까?

따라서 ‘3총리 회동’이 성사되면, 이 대표에 대한 강력한 압박 카드로 작용하기보다는 3총리의 입장 차이를 확인하는 자리가 될 가능성이 더 높다. 이 전 총리의 신당 창당 동력이 약화되는 계기로 작용한다는 의미이다.

때문에 이 전 총리는 ‘3총리 회동’에 대해 소극적이다. 지난 24일 저녁 정 전총리와 서울 여의도 순복음교회에서 열린 성탄 전야 행사에 참석한 뒤 기자들과 만나 3총리 회동에 대해 “정 전 총리로부터 그렇게 구체화한 것은 아니라고 들었다”고 밝혔다. 정 전 총리가 이 전 대표가 추진 중인 신당 창당과 관련해 우려를 표했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그런 얘기는 없었다”고 대답했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전 대표와 정세균 전 국무총리가 24일 저녁 서울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열린 '거룩한 기다림'의 밤 행사에 참석, 박수를 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전 대표와 정세균 전 국무총리가 24일 저녁 서울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열린 '거룩한 기다림'의 밤 행사에 참석, 박수를 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민주당 비명계 그룹인 ‘원칙과상식’의 멤버인 이원욱 의원은 25일 페이스북에 ‘지금 이재명 대표에게 필요한 것은 권력욕이 아니라 진짜 정치다, 민주당 혁신이다’라는 글을 올려 이같은 이 대표의 침묵을 맹비판했다. 이 의원은 “묵언 수행이 길어지고 있다. 김부겸 전 총리와의 만남 이후 이 대표와 당지도부를 통해 당의 활로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다”면서 “빌런정치라는 조롱을 받는 한 축답게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에 대한 빗나가는 화살을 쏘았을 뿐이다”고 꼬집었다. 이 의원은 “문제는 이재명 대표다. 정치는 친명, 개딸, 재명이네마을에 있지 않다”면서 “위에서 내려와 소통하고 협력해야 한다. 그것은 이 대표가 자주 말하는 단합의 방식으로는 불가능하다. 통합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친명계 중심의 당내 정치와 내년 총선 공천작업이 ‘단합’이라는 미명하에 강행된다면 그것은 혁신이 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한 것이다. 나아가 당내 다양한 계파를 어우르는 ‘통합’의 필요성을 강조한 셈이다.

비명계인 이 의원이 이낙연 신당 지지 의사를 피력하기보다는 이 대표의 통합 행보를 요구한 것은 김부겸, 정세균 두 전직 총리와 유사한 태도이다.

문재인과 권양숙을 만나도 친명 중심 공천 강행하면 당내 갈등 격화 불가피...‘3총리 연대’ 성사될 수 있어

이 대표는 새해 첫날인 1일에는 경남 김해를 찾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를 예방하고, 다음날인 2일에는 경남 양산의 문재인 전 대통령을 예방하는 일정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총리와 정 전 총리와의 회동에 이어 문 전 대통령, 권 여사 등에 대한 예방을 통해 이재명 체제를 중심으로 한 당의 통합과 내년 총선 승리 메시지를 분명하게 전달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하지만 이 대표의 이같은 정치행보 앞에 놓여진 최대 난제는 ‘공천 갈등’ 해결이다. 실제로 민주당 내 공천 갈등은 이미 심상치 않다. 총선 출마자 예비 후보 심사에서 이낙연계로 꼽히는 최성 전 고양시장이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 최 전 시장은 이의를 제기했지만 결과를 바꾸지 못했다.

[사진=연합뉴스TV 캡처]
[사진=연합뉴스TV 캡처]

김윤식 전 시흥시장도 친명 핵심인 조정식 사무총장의 지역구인 경기 시흥을에 출사표를 던졌으나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 비명계 모임인 ‘원칙과상식’은 입장문을 발표해 “검증위의 친명 검증이 시작되고 있다”면서 “21대 때도 명백한 특혜 공천으로 손쉽게 금배지를 달았던 조 사무총장이 이번에는 김 전 시장에 공천 불복 굴레를 씌워 아예 경선에도 못 나가게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오는 28일 이후 출범할 것으로 알려진 민주당 공천관리위원회의 구성이 공정성을 인정받지 못한다면, 이 대표 체제는 실제적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친명계인 조정식 사무총장이 총선기획단장을 맡고 있는 상황에서 공천관리위마저 친명계 일색으로 포진된다면, 당내 갈등은 폭발할 가능성이 높다.

그럴 경우 정 전 총리와 김 전 총리의 입장은 상당한 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다. 이 대표 중심의 통합이 물건너갔다고 판단되면, 이낙연 신당에 대해 전향적 입장을 보일 수도 있다. ‘3총리 연대’가 이 대표 퇴진을 압박하는 강력한 주체로 전환될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3총리 연대’가 이 전 총리 편을 들지 여부는 이 대표의 ‘공천 공정성’ 여부에 달려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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