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은 26일 비대위원장 수락 연설을 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비난했지만, 전반적인 여론의 흐름은 ‘새로운 리더십’의 출현에 주목하는 모습이다. 분명히 기성 정치인과는 다른 화법으로 정치의 목표를 차별화했다는 평가를 낳고 있다.

[사진=채널A 캡처]
[사진=채널A 캡처]

한 위원장이 설파한 새로운 정치의 가치는 5가지 정도로 정리된다. 이 5가지의 가치는 향후 정국을 좌우할 중대 변수가 될 전망이다. 연초 정국은 물론이고 내년 총선을 겨냥한 여야관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탓이다.

① 한동훈의 MZ스러움= 연설문 직접 쓰고 가식없는 직설법으로 일관해...2030표심에 영향 줄 듯

우선 수락 연설문 작성부터 관행을 깼다. 국민의힘 내 연설문 및 원고 담당자가 초안을 쓰면 당대표가 최종 검토하는 방식을 거절했다. 한 위원장은 수락 연설문 초안이 필요하느냐는 국민의힘 관계자의 질문에 대해 “아직 못 썼는데, 제가 직접 쓸 겁니다”라고 답한 것으로 알려진다. 내가 할 말은 내가 직접 쓴다는 발상 자체가 MZ스럽다.

화법도 과거 정치 지도자와는 사뭇 다르다. 한 위원장은 “어릴 때, 곤란하고 싫었던 게 ‘나중에 뭐가 되고 싶으냐, 장래 희망이 뭐야’라는 학기 초마다 반복되던 질문이었다”면서 “저는 정말 뭐가 되고 싶은 게 없었거든요”라면서 “대신, 하고 싶은 게 참 많았습니다. 좋은 나라 만드는 데, 동료시민들의 삶을 좋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되는 삶을 살고 싶었습니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집권 여당의 비대위원장에 걸맞는 장중한 표현보다는, 솔직하고 직설적인 어린 시절 고백을 통해 자신이 정치에 입문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이러한 MZ스러움은 내년 총선에서 드러날 2030 표심의 방향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분석된다.

② 한동훈이 규정한 내년 총선구도= 운동권 특권정치를 청산하고 ‘상식적인 많은 국민들’을 정치의 중심으로 세워라

이어 곧바로 날을 예리하게 세웠다. ‘좋은 나라’라는 소박한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제 1의 목표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개딸전체주의 그리고 운동권 특권 정치의 청산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대 범죄가 법에 따라 처벌받는 걸 막는 게 지상 목표인 다수당이 이 나라의 현재와 미래를 망치는 것을 막아야 한다”면서 “그런 당을 숙주 삼아서 386이 486, 586, 686이 되도록 썼던 영수증 또 내밀며 대대손손 국민들 위에 군림하고 가르치려 드는 운동권 특권정치를 청산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조선일보 유튜브 캡처]
[사진=조선일보 유튜브 캡처]

특히 이 대표 및 운동권 특권 정치와의 대척점에 국민의힘이 아니라 ‘상식적인 많은 국민들’을 위치시켰다. 내년 총선을 민주당과 국민의힘 간의 대결이 아니라 ‘나라를 망치는 이 대표와 운동권 특권정치’ 대 ‘상식적인 많은 국민들’ 간의 승부로 규정했다.

‘상식적인 많은 국민들’은 정치권에서 흔하게 사용되는 표현이 아니었다. 좌파도 우파도 아니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양극화된 한국 정치 속에서 주역은 목소리가 큰 좌파 혹은 우파였다. 한 위원장은 침묵하는 다수였던 ‘상식적인 많은 국민들’을 정치의 중심으로 끌어올리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③ 중도층 끌어안기 전략= 타협의 여지 남기지 않은 ‘이재명과 운동권 특권정치’ 비판

이를 통해 정치적 타협의 여지를 남겨두지 않았다는 점도 주목된다. 이 대표와 민주당 주류인 운동권 정치인들을 나라를 망친 세력으로 규정한 만큼, 그 세력을 청산해야 한국정치가 정상화되고 좋은 나라를 만들 수 있다는 논리이다.

‘상식적인 많은 국민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지는 않았다. 문맥상으로 보면 양극화되고 극단화된 한국 정치 속에서 침묵하고 있지만 합리적인 다수 국민 즉, 중도층을 지칭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 대표와 운동권 정치인을 정면 공격한 것은 내년 총선의 승패를 좌우할 변수로 꼽히는 중도층을 끌어안기 위한 전략의 일환인 셈이다.

④ 정치와 게임을 구별= 이재명의 승리지상주의는 ‘동료시민을 위한 정치’가 아니라 ‘민주당을 위한 게임’

선거와 정치를 바라보는 관점도 이 대표와 전혀 달랐다. 한 위원장은 “정치인들 사이에 주고받는 말들을 보면, 정치가 게임과 다를 게 없는 것처럼 착각하기 쉽다”면서 “그러나 정치는 게임과 달리 ‘누가 이기는지’ 못지 않게 ‘왜 이겨야 하는지’가 본질이기 때문에 둘은 전혀 다르다”고 단언했다. “이 위대한 나라와 동료시민에 대한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 이기려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 같은 정치관은 이 대표의 최근 발언을 비판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 대표는 선거제 논의와 관련해 현행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에서 병립형 비례대표제로의 회귀를 시사하는 듯한 발언을 하면서 “멋지게 지면 무슨 소용이냐”고 밝힌 바 있다. 선거제 논의는 민주당이 승리할 수 있도록 이뤄져야 한다는 뜻이다. 정치의 최고 미덕으로 ‘승리지상주의’를 제시한 셈이다.

한 위원장은 정치의 본질은 ‘왜 이겨야 하는지’ 명분이 중요하다고 강조함으로써 이 대표가 정치를 망치는 논리적 근거를 제시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한 위원장의 논리에 따르면, ‘멋지게 지면 소용이 없다’는 이 대표의 사고방식은 위대한 나라와 동료시민을 위한 정치가 아니라 민주당을 위한 게임을 지향하는 모순을 드러내게 된다.

⑤ 미덕이었던 ‘선당후사(先黨後私)’를 비판= ‘선민후사(先民後私)’를 새로운 가치로 제시...‘공천 혁신’의 명분 확보한 듯

 

[사진=조선일보 유튜브 캡처]
[사진=조선일보 유튜브 캡처]

한 위원장은 나아가 ‘선당후사(先黨後私)’를 해서는 안되고 ‘선민후사(先民後私)’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선당후사는 국민의힘의 이익, 선민후사는 국민의 이익을 각각 도모하는 행위이다. 그동안 수많은 정치인들은 ‘선당후사’를 비장한 표정으로 외치곤 했다. 이처럼 정치인의 미덕으로 인정받아온 ‘선당후사’를 비판하며 ‘선민후사’를 새로운 정치의 가치로 제시한 것은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내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한 위원장은 “저부터 ‘선민후사’를 실천하겠다”면서 “저는 지역구에 출마하지 않겠다. 비례로도 출마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오직 동료시민과 이나라의 승리를 위해 용기있게 헌신하겠다”면서 “제가 그 승리의 과실을 가져가지는 않겠다”고 다짐했다.

이같은 자신의 이익 포기와 희생을 ‘공천 혁신’을 실행하는 명분으로 삼고 있다. 한 위원장은 공천 기준과 관련, “공직을 방탄으로 생각하지 않는 분들, 특권의식 없는 분들만 국민들게 제시하겠다”면서 “국회의원 불체포특권을 포기하기로 약속하는 분들만 공천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일각에서는 한 위원장의 불출마 선언을 여의도를 거치지 않는 ‘대권 직행’ 선언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하지만 차기 대선까지 남은 3년이라는 기간과 한 위원장의 리더십 스타일을 감안할 때 ‘공천 혁신’ 내지는 ‘대대적인 물갈이 공천’을 위한 징검다리의 성격이 더 강하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친윤·중진 의원들의 불출마 또는 험지 출마 요구를 할 수 있는 동력을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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