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우 북한인권시민연합 이사장
김석우 북한인권시민연합 이사장

 

대한민국은 세계적 기준에서도 앞서가는 민주사회가 되었다. 조선왕조나 일제통치 시기와는 비교할 수조차 없다. 조선왕조 시기에는 반상(班常)의 구분이 뚜렷했다. 일제 통치 시기에 신분제도가 붕괴하였지만, 천인계급에 대한 사회적 차별은 계속되었다. 1950년 6.25 동란의 영향은 매우 컸다. 민족 대이동이 벌어졌고, 그와 함께 반상제도나 천인계급도 사라졌다. 백정(白丁)이라는 계급은 이제 흔적도 없고, 오히려 식품업자로서 부를 쌓을 수 있는 좋은 직업이 되었다. 재인(才人)의 후예들이 현대예술의 총아가 되었고, K-Pop 문화를 전 세계에 떨치는 유명인이 되었다.

  옆 나라 일본과 비교해보자. 패전 후 일본도 자유민주주의가 되었으나 아직도 천인계급인 부라쿠민(部落民)이 2백만 명이나 존재한다. 법적으로 평등을 보장하지만 사회적 차별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인도는 어떠한가? 카스트 제도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법적으로 모든 국민은 평등하고, 현직 총리인 나렌드라 모디도 천인계급 출신이지만, 사회 관습으로서의 카스트 제도는 계속 유지된다. 

  공산권과 비교하면 어떠한가? 평등사회라는 중국에서 공산당원과 비당원의 차별은 너무나 크다. 태자당(太子黨)으로 불리는 공산당 간부의 자제들은 대를 이어서 권력과 부를 독점한다. 신분의 세습이다. 빈부의 격차가 한국보다 현격하다. 중국의 지니계수(Genie Index)는 한국보다도 훨씬 높다. 2019년 0.495라 하였으나 중국 정부는 정확한 수치를 감추려 한다. 지니계수가 0.4를 넘으면 사회가 불안하다고 한다. 2023년 OECD자료에 의하면 한국은 0.331로 일본의 0.334와 비슷하다. 북한은 중국보다도 더 심각하다. 김씨 일가의 독재 전횡이 3대 세습에서 4대 세습으로까지 이어지려 한다. 모든 주민을 3대 계층으로 나누고, 55개로 세분류한다. 신분 상승은 거의 불가능하다. 자기 집안이 적대 계층에 속하면 아무리 노력해서 성적이 좋아도 김일성 대학에 들어갈 수 없다. 평등을 지향한다는 공산주의 이상과는 정반대다.

  이들과 비교하면 대한민국이야말로 정말 민주화된 사회다. 민주주의의 발상지라 할 수 있는 영국에서도 계층 상승하는데 보통 3세대가 걸린다고 한다. 사회학계의 원로 송복 교수의 설명이다. 하류층인 탄광 노동자 할아버지가 신분 상승의 꿈을 품고 열심히 노력해서 아들 교육을 잘하면 손자 대에 가서야 중류층으로 상승하게 된다고 한다. 

  한국이야 말로 자신이 노력하면 당대에 최상층으로 신분 상승이 가능한 사회다. 개천에서 용이 나올 수 있는 사회다. 정주영 같은 입지전적 인물의 예가 그러하다. 강원도 통천 시골에서 서울로 올라와 미곡상 배달부터 시작하여 미군부대 건설공사를 하고 기업을 일으켜 맨땅에서 현대조선을 세계적 기업으로 키우고, 현대 자동차를 생산하는 재벌총수였다. 그러한 예는 너무나 많다.

 근본 원인은 어디에 있나? 우선 초대 대통령 이승만이 자유민주주의를 기본으로 삼아 건국하였다. 신분제도를 철폐하였다. 우리헌법 제11조가 명확하게 하고 있다. “(제1항)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제2항) 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어떠한 형태로도 이를 창설할 수 없다.”

 그 후 민주주의 제도는 꾸준하게 진화하였다. 박정희 정부에서도 미국의 선진제도를 크게 도입하였다. 직업공무원 제도를 확립하고 그 충원은 공개경쟁시험을 원칙으로 하였다. 박 정부 이전부터 한국에서는 상급학교 특히 대학 진학을 위해서는 엄격한 시험을 통해 선발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였다. 이를 어기는 것은 매우 심각한 터부(금기사항)였다. 학력위조가 온 국민의 분노를 사는 것도 바로 이러한 국민감정 때문이다.

 여기에 김영삼 대통령이 민주주의를 정착시킨 용단을 빼놓을 수 없다. 일종의 특권계급이랄 수 있는 하나회를 전광석화같이 척결하였다. 1993년 2월 25일 대통령 취임 11일 만에 하나회 소속 군 핵심 간부들을 교체하였다. 서슬이 퍼런 군부 권력이 반격할 틈도 주지 않고 결단하여 군 내부의 특권 사조직을 해체하였다. 군에 대한 문민통제를 확립한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이었다면 하나회의 반격이 두려워 못 했을 거라고 정치학자들은 평가하고 있다. 

  하나회 척결보다 더 중요한 개혁은 금융실명제의 실시다. 1949년 토지개혁 이래 가장 비중이 큰 개혁이다. 미국과 유럽의 선진국에서는 투명한 금융제도 때문에 검은돈의 흐름이 기본적으로 차단되어 있다. 스위스는 전 세계 검은돈의 도피처를 만들기 위해 금융실명제를 택하지 않았다. 차명계좌를 얼마든지 개설할 수 있다. 한국에서도 과거 경제부처에서 금융실명제를 실시해야 한다고 여러 번 정책건의를 했었지만, 한국경제를 경색시킬 것이라는 기업인들의 경고 때문에 실행하지 못했었다. 

  김영삼 대통령은 극비리의 준비를 거쳐 1993년 8월 12일 대통령긴급경제명령의 형식으로 금융실명제를 전격적으로 발표하였다. 주변의 가까운 친인척은 물론이고 청와대 경제수석마저도 모르게 추진하였다. 그가 시기적으로 너무 빠르다는 의견을 비쳤었기 때문이다. 김영삼 대통령은 아들에게까지도 엄격하게 비밀을 유지하였다. 정권 말기 아들 김현철이 실형을 살게 된 것도 금융실명제 때문이었다.

  금융실명제와 동시적으로 4급 이상 고위공직자의 재산 신고를 엄격하게 시행하였다. 대통령 본인의 재산을 가장 먼저 공개하였다. 공직사회의 부정부패를 방지하는 핵심적 조치다. 지금은 은행에서 1천만 원의 거래를 하면 자동으로 금융정보분석원에 통보된다. 결혼축하금이라든지 부의금이라든지 부동산 거래 대금이라든지 하는 사유가 소명되지 않으면 조사받을 수 있게 되었다. 정치권에서는 검은돈의 뒷거래를 할 수 없게 되었다. 차떼기와 같이 사과상자에 현금뭉치를 넣어 주고받는 거래가 탄로 나서 정치 추문이 되기도 했지만, 차명계좌를 마음대로 만들 수 있던 과거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대변혁이 일어난 것이다. 고위직 공무원의 국회 청문회나 국회의 논의과정에서 주요 인사들의 재산은 유리알처럼 투명하게 공개된다. 

  이제 민주주의를 위한 한국의 투명한 시스템은 어떤 나라보다도 완전하게 정비되어 있다. 일본보다도 선진화되었다. 아직도 일본은 금융실명제를 도입하지 못하고 있고, 정치계에서 검은돈의 거래 때문에 수시로 추문이 터지고 있다.

  김영삼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하여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지만, 그의 용기와 헌신이 없었더라면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은 크게 지체되었을 것이다. 하나회 척결과 금융실명제로 한국 민주주의는 루비콘강을 건너게 되었다. 이후 한국의 민주주의는 정착되었고, 좌와 우의 정권교체가 여러 차례 이루어져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가 되었다. 국제평가기관들도 부패인식지수(국제투명성기구), 언론자유지수(국경없는기자회), 민주주의 지수(영국 이코노미스트지) 등에서 한국이 앞서가는 민주주의 국가라고 평가하고 있다. 

  다만 아직도 586‘운동권’이란 이름으로 특권층이 되어버린 종북주사파가 주요 정치세력으로 버티는 문제가 남았다. 자유민주주주의를 부정하고 보편적 가치로서의 인권을 외면하는 반국가적인 종북세력이야말로 암적 존재가 아닐 수 없다. 민주주의자라는 이름을 말할 자격이 없다. 그들이 사라져야 한국의 장래가 밝아지게 된다. 

  우리는 또한 대한민국을 비난하는 최근의 악의적 여론의 생성·전파과정도 주의 깊게 경계해야 한다. 친북세력, 친중 세력이 이를 주도하는 과정이 밝혀지고 있다. 피땀 흘려 지키고 키워 온 한국의 민주주의를 자유 시민들이 일치단결하여 지켜내야만 한다. 

김석우 북한인권시민연합 이사장(전 통일원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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