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병원정치...“부산에 일주일 정도 누워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김영삼 전 대통령이 정치인으로서 보여준 최고의 퍼포먼스는 5공화국초 전두환 정권에 맞서 벌였던 장기간의 단식투쟁이었다.

1980년 봄 신군부에 의해 강제로 정계은퇴를 당하고 서울 상도동 자택에 연금된 김영삼은 1983년 5월18일 광주민주화운동 3주년 기념일부터 6월9일까지 민주화 5개항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20일이 넘는 단식농성을 벌였다.

김영삼은 5월25일 단식으로 심신이 쇠약해지자 경찰에 의해 강제로 서울대학교 병원으로 옮겨졌다. 5월27일에는 당시 여당인 민정당의 사무총장 권익현이 전두환을 대신해서 병원을 찾아와 단식을 중단해줄 것을 당부하는 전두환 대통령의 뜻을 전달했으나 면박만 당하고 돌아갔다.

권익현이 사흘을 연속으로 김영삼을 찾아가 단식을 중단하고 미국으로 떠나서 당분간 편안하게 지내라고 권유했지만, “나를 시체로 만든 뒤에 미국으로 부치면 된다"고 무안을 주어 되돌려 보내기도 했다.

당시 김영삼의 단식에 대한 보도를 할 수 없었던 언론은 ‘재야인사 문제’, ‘한 재야인사 현안’이라고 언급했다. 이 단식을 통해 김영삼은 가택연금 해제를 얻어냈고, 민주산악회라는 조직을 만들어 민추협으로 발전시켜 1987년 직선제 민주화투쟁에 기틀을 만들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지난 2일 부산 방문중 피습을 당하자 부산대병원으로 옮겨져 응급치료를 받은 뒤 곧바로 헬기를 통해 서울대병원으로 향했다.

일어나서는 안 될 불행한 정치테러였음데도, 이번 일은 이 대표에게 상당한 기회가 될 뻔 했다. 이낙연 전 대표를 비롯한 당내 비명계 인사들로부터 퇴진 압력을 걷어내는 것은 물론, 상당한 ‘동정표’까지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산대병원의 실력을 믿지 못해서, 게다가 수천만원의 비용이 드는 헬기를 타고 서울대병원으로 날아간 것에 대한 비판과 후폭풍이 동정표를 압도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부산은 민주당 지지세가 만만치 않은 곳이다. 4년전 21대 총선에서 민주당은 부산의 국회의원 선거구 18곳 중 3명을 당선시켰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는 절반에 가까운 5석이나 차지했다.

부산의 어느 지역에 민주당 후보로 출마해도 최소 35%의 득표율에 평균 40% 정도는 가져갈 수 있다. 부산에 거주하는 호남출신 유권자가 거의 30%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과거 김영삼 전 대통령의 야당 시절부터 오랫동안 부산이 야도(野都)였다는 점 등이 큰 원인이다.

그러다보니 부산에서는 총선때 마다 민주당 후보가 되기위한 공천경쟁도 매우 치열한 편이다. 국민의힘이 광주나 전남, 전북에서 평소 당협위원장은 물론 출마할 사람조차 구하지 못하는 것과는 전혀 딴판인 것이다.

이재명 대표가 이번에 만약 부산대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일정기간 입원을 하면서 ‘병상정치’를 했더라면 다가오는 총선에서 부산지역에 미칠 영향이 상당했을 것이다.

이 대표를 습격한 범인이 부산 사람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부산 사람들은 ”우리 지역에, 그것도 부산의 미래가 달린 가덕도 신공항을 둘러보다가 그런 일을 당하다니...“라며 미안함을 금치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이재명 대표는 부산 사람들로부터 욕을 먹기 바쁜 상황이다.

특히 부산대학교 학생들의 분노가 대단하다. 부산대학교 학생들이 이용하는 온라인커뮤니티인 ‘에브리타임’에는 이 대표의 서울행과 관련한 글들로 도배돼 있다 .

한 작성자는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목이 민감한 부분이어서, 후유증을 고려해서 잘하는 병원에서 해야할 것 같다"라고 말한 부분을 인용하며 "부산대병원 인식 진짜 너무하다"라고 한탄했다.

해당 글을 본 네티즌들은 "쟤들은(민주당) 절대 안 뽑을란다" "아니 부산대병원이 찢어진 상처 하나 처리 못하는 병원이냐? 잘 몰라서 그러는데 여기 대형병원 아니냐" "어쩌겠냐? 지방 병원 인식이 이렇지"라며 비판했다.

지난 총선때 민주당 당적으로 부산 중구 영도구에서 도전했다가 공천을 받지 못했고, 이번에 다시 도전할 예정인 한 민주당 인사는 ”부산대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한 일주일 정도 입원해 있었으면 더 없이 좋았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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