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재판을 심리 중이던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4부 강규태 부장판사(사법연수원30기·53)가 2월 정기인사를 앞두고 돌연 사표를 제출해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사진=SBS 캡처]
[사진=SBS 캡처]

법조계 일각에서는 공직선거법 재판을 16개월째 질질 끌던 강 부장판사의 사퇴를 예견하는 시각도 있었던 만큼, 사퇴 자체보다는 강 부장판사가 내놓은 사퇴 입장에 더 관심이 쏠렸다. 강 부장판사는 “출생지라는 하나의 단서로 재판을 느리게 진행한다고 비난해 억울하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강규태 부장판사, 관련 법조항과 검찰 요구도 무시하면서 ‘이재명 재판 지연’

사퇴에 대한 강 부장판사의 입장은 한 유튜브 채널을 통해 공개됐다. 최진녕 변호사는 해당 영상에서 강 부장판사가 최근 서강대학교 법학과 동기들이 속해 있는 SNS단체대화방에 사표를 제출한 것과 관련해 해명한 메시지를 공개했다.

이 내용에 따르면 강 부장판사는 "주요 일간지에 난 대로 2월 19일 자로 명예퇴직을 한다"며 "변호사로 사무실을 차려 새로운 삶을 살아보려고 한다"고 자신의 사직 사실을 알렸다.

그러면서 "상경한 지 30년이 넘었고 지난 정권에 납부한 종부세가 얼마인데 결론을 단정 짓고 출생지라는 하나의 단서로 사건 진행을 억지로 느리게 한다고 비난을 하니 참 답답하다"고 덧붙였다. 법조인 대관에는 강 부장판사가 1971년 전라남도 해남에서 태어난 것으로 나와 있다.

또 "내가 조선시대 사또도 아니고, 증인이 50명 이상인 사건을 어떻게 하라는 거냐"고 반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시대 사또’는 ‘원님 재판’을 의미하는 것으로 관측된다. 사법 절차를 무시하고 원님이 검사와 판사의 역할까지 다 맡는 상황을 가정하는 개념에 해당한다.

강 부장판사는 지금껏 공직선거법 재판 과정에서 관련 법조항과 검찰의 요구를 전부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재판을 지연시켜왔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사또가 아닌데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고 재판 지연 사실을 변명하고 있는 것이다.

강 부장판사가 위반한 법 조항= 6개월 안에 1심을 끝내도록 강행규정을 둔 공직선거법 제 270조

강 부장판사는 크게 2가지 면에서 비판을 받고 있다. 첫째, 2022년 9월 8일 기소된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재판을 16개월째 질질 끌면서 관련 법을 위반했다는 점이다. 둘째, 1심 선고를 해야 하는 시점에 무책임하게 사표를 제출해, 다른 판사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는 점이다.

이재명 대표는 지난 대선 때 선거법을 위반한 혐의로 지난 2022년 9월 기소됐다. 혐의는 크게 두 가지다. 대선 당시 방송에 나와 대장동 개발의 핵심 실무자였던 고(故) 김문기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을 성남시장 시절에 몰랐다고 허위 사실을 공표한 혐의이다. 또 백현동 아파트 특혜 개발과 관련해 국토부로부터 “부지 용도를 상향 조정하지 않으면 문제삼겠다”는 협박을 받았다며 허위 사실을 공표한 혐의도 받았다.

공직선거법 제 270조에 따르면, 선거법 재판은 6개월 안에 1심을 끝내도록 강행규정으로 정하고 있다. 그런데 재판 초기에 쟁점과 증거를 정리하는 공판준비기일에만 6개월이 걸렸다. 이미 법 규정을 어긴 상태인데, 유무죄를 가리는 정식 재판도 2주에 1회씩만 열었다.

검찰은 주 1회 재판을 요구했으나 묵살하고 2주에 1회 재판 열어...공판준비기일에만 6개월 소요

그 결과 이 대표가 김문기씨를 몰랐다고 한 혐의를 심리하는 데만 1년 넘게 걸린 것이다. 바로 그 점에서 ‘처음부터 재판을 질질 끌려는 의도였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강 부장판사가 증인이 50명이 넘었다고 불평을 할 게 아니라, 증인 수를 조정하거나 1주에 2회씩 집중심리를 했었어야 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TV 캡처]
[사진=연합뉴스TV 캡처]

10일 채널A에 출연한 이종근 정치평론가는 강 부장판사의 사표에 대해 “국민을 우롱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면서 “처음부터 주 1회 해달라는 검찰의 요구를 묵살하고 주 2회 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 평론가는 “강 부장판사가 우리법연구회 회원이었다. 지금 사표를 던짐으로써, 이렇게 느리게 한 이유가 있었다는 결론이다”고 비판했다. 따라서 “사표를 수리하지 않고, 감찰을 해봐야 한다”고 제안했다.

민주당 내부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없지는 않다. 함께 출연한 서재헌 민주당 대구시당 청년위원장은 “개인적으로는 탄핵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는 입장을 밝혔다. 탄핵중독증이라는 비판을 우려한다면서 “강규태 방지법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는 제안도 내놓았다.

강규태 사표의 결과 1= 16개월째 끌던 이재명 재판은 더욱 지연돼

그만큼 사회적으로 관심도가 높은 재판을 지연시킨 강 부장판사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는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정치권에서 나오는 실정이다. 법조계 내부에서도 강 부장판사를 비판하는 의견이 적지 않다. 저런 식으로 재판을 지체하다가 나가버리면 동료 판사들에게 엄청난 부담을 주기 때문이다.

강 부장판사는 지난해 12월 22일 공직선거법 재판정에서 ‘다음 재판일을 1월 19일, 그 다음 재판일을 2월 2일’이라고 밝혔다. 동계 휴정기를 감안하더라도 애당초 빨리 진행할 생각이 없었던 것으로 관측된다. 더욱이 이재명 대표가 흉기 피습을 당하면서 1월 19일 일정도 정하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강 부장판사가 사직 의사를 밝힌 것이다. 이에 대해 선거법 재판을 받아본 경험이 있는 신지호 전 의원은 유튜브 채널에서 “제 경우는 강행규정대로 6개월 안에 끝났다. 공직 선거법 재판을 6개월 안에 끝내라는 거는 임기 다 채우고 나서 유죄 판결을 때려봤자 의미가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상식적으로 사표를 낼 생각이 있었다면 이 재판을 왜 지금까지 잡고 있었냐?”고 비판했다. 대부분의 경우 갑작스럽게 사표를 낼 결심을 하지 않는다는 점을 들며, 결과적으로 재판을 지연시키면서 이 대표를 도운 꼴이 됐다고 지적한 것이다.

강규태 사표의 결과 2= 새 재판부, 검찰 모두 엄청난 기회비용 지불해야

강 부장판사는 당초 2월 법관 정기인사 대상자로 알려진다. 강 부장판사가 재판을 지연시키고 1심 선고를 내리지 않은 상태에서 새로운 판사가 오면 ‘공판 갱신’을 진행한다. 재판부 구성원이 바뀔 때 새 재판부가 증거조사를 다시 하게 되는 절차이다. 피고인이 동의하면 간략하게 진행될 수 있지만, 변호인 측에서 ‘원칙’을 고집할 경우 앞선 재판의 녹취를 다 들어야 하는 등 갱신 절차에만 수개월이 걸릴 수도 있다. 재판부와 검찰 모두 엄청난 기회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것이다.

[사진=채널A 캡처]
[사진=채널A 캡처]

법조계에서는 ‘김명수 대법원 체제 이전에는 판사들의 직업윤리가 투철했지만, 그 이후로는 그런 의식이 해이해졌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이 대표 공직선거법 재판보다 훨씬 복잡한 김경수 전 경남지사의 드루킹 재판만 해도 5개월 이내에 1심 선고까지 끝난 사례가 대표적으로 꼽힌다. 당시에는 선거법 재판을 6개월 이내에 끝내야 한다는 인식이 보편적이었다는 것이다.

재판 지연의 피해는 동료 판사들이 떠안아...미안해하지 않는 강규태, “이제는 자유다” 외쳐

하지만 김명수 체제에서는 다른 판사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되겠다는 ‘동료집단 압력’이 사라졌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16개월이 넘도록 재판을 질질 끌고 있는 강 부장판사가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는 지적이다.

그러면서도 강 부장판사는 아무런 압박을 느끼지 못하는 것으로 관측된다. 최진녕 변호사가 공개한 내용에 따르면 강 부장판사는 “사건 진행을 느리게 한다고 비난을 하니 참 답답하다. 하여간 이제는 자유다. 변호사 사무실 차려서 새로운 삶을 살겠다”고 소회를 밝혔다. 새로 오는 판사에게 미안한 감정이라고 찾아볼 수 없는 이기적인 각오로 보인다.

따라서 공직선거법 270조가 재판기간에 관한 강행규정을 밝히고 있지만, 처벌규정이 없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다. 조희대 대법원 체제에서 ‘동료집단 압력’이라는 직업윤리의 회복과 함께, 판사들이 제대로 재판하는 풍토가 조성돼야 한다는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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