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에 ‘트럼프 변수’가 부상하고 있다. 오는 11월 실시될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트럼프의 대선공약이 한국 경제에 중대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는 관측이 대두되고 있다.

27일 네바다에서 유세하는 트럼프 전 대통령. [로이터=연합뉴스]
27일 네바다에서 유세하는 트럼프 전 대통령. [로이터=연합뉴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달 치러진 공화당의 아이오와 코커스(당원대회)와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예비선거)에서 각각 1위를 차지함으로써 대세론을 굳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경쟁자 없이 독주하고 있다.

11월 미 대선 여론조사, 트럼프가 오차 범위 내에서 바이든 눌러

올 미국 대선이 전·현직 대통령의 리턴매치로 치러질 경우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바이든 대통령과의 양자 및 다자 가상대결에서 각각 오차범위 내인 6% 포인트 차로 앞선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로이터· 입소스가 지난 22∼24일(현지시간) 미국 성인 1천250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25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오차범위 ±3%p)에 따르면 트럼프는 바이든 대통령과의 가상 양자 대결에서 40% 대 34%로, 6% 포인트 격차의 우세를 보였다. 또 무소속 후보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를 비롯해 제3후보군을 포함한 가상 다자 대결에서도 트럼프는 36%의 지지를 획득, 30%에 그친 바이든보다 6% 포인트 앞섰다.

트럼프 재집권시 ‘IRA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워...문재인 정부의 전철을 밟지 말고 선제적 대응해야

트럼프는 리쇼어링을 통한 일자리 창출 등을 골자로 한 ‘바이드노믹스’의 대표주자격인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폐기하겠다는 공약을 내건 바 있다. 트럼프가 재집권하면 IRA는 폐기되거나 보조금 정책이 대대적으로 수정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따라서 트럼프가 재집권에 성공할 경우 현대자동차와 국내배터리 3사의 북미시장 경쟁력에 중대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미국 현지 전기차 공장 완공을 앞두고 있는 현대차와 기아 그리고 미국에 합작법인 형태로 진출해 있는 LG에너지솔루션을 비롯해 삼성SDS, SK온 등 국내 배터리 기업들은 어떤 영향을 받게 될까.

그 손익계산서를 작성하기란 쉽지 않다. IRA 폐지 혹은 축소의 효과가 단선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와 국내 기업들이 IRA 내용을 세밀하게 분석해서 트럼프 재집권시 IRA 폐지에 대한 대응전략을 수립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문재인 정부 당시 바이든 행정부의 IRA에 대한 대응전략이 부족해 국내 기업들이 큰 손해를 보았던 전철을 되풀이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IRA 전기차 보조금 조항= 현대차, 기아,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에게 불이익 안겨

IRA는 기후변화 대응, 의료비 지원, 법인세 인상 등을 목적으로 지난 2022년 8월 16일 발효됐다. 소비자가 전기차 구매 시 보조금(세액공제 혜택)을 받으려면 중국 등 우려국가의 배터리 부품과 광물을 일정비율 이하로 사용하도록 했다. 이런 조건을 갖춘 전기차의 경우 중고차에 최대 4000달러를, 신차에 최대 7500달러의 세액 공제를 해주는 내용이다.

세부적으로 따지면 전기차 보조금 7500달러(대당)의 절반을 받기 위해서는 배터리의 핵심 자재인 리튬, 코발트, 니켈 등을 미국 또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국가를 통해 공급받아야 한다. 그 비율은 2024년 40%에서 2026년 80%까지 확대된다. 나머지 절반의 보조금은 북미에서 제조되는 배터리의 주요 부품(양극재·음극재·전해액·분리막) 비율이 50% 이상이어야 받는다. 그 비율은 2029년 100%까지 확대된다.

또 2023년부터 북미에서 최종 조립된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지급한다는 조건도 미국내 생산을 전제조건으로 하는 조항이다.

중국을 배제한 전기차 공급망을 구축하려는 의도를 분명히 한 것이다.

이같은 IRA는 현대차와 국내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등과 같은 외국기업에게만 족쇄를 채운 게 아니다. 중국 원자재 의존도가 높은 미국 자동차 업계의 반발도 적지 않다. 리튬, 니켈 등 원자재 원광을 중국에서 70% 이상 제련하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 기업들도 2026년까지 이들 원자재 원광의 80%를 미국이나 미국과 FTA를 체결한 국가로부터 조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배터리 3사도 IRA의 조건을 충족시켜야 북미시장은 물론 글로벌 시장 판매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게 된다.

미국 정부는 2023년 4월 17일 IRA 세부지침에 따라 최대 7500달러(신차 기준)의 보조금을 지급하는 16개 전기차 대상 차종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테슬라 모델3와 모델Y를 비롯해 쉐보레 볼트, 이쿼녹스, 포드 E-트랜짓, 머스탱 등 미국 제조사 전기차만 포함됐다. 국내 생산해 미국 현지에서 판매 중인 현대 아이오닉5와 기아 EV6 등은 보조금 대상에서 제외됐다. 앨라배마 공장에서 조립되는 현대차 GV70도 그동안 보조금을 받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재무부 세부지침 발표 이후에는 전기차 보조금 지원대상에서 빠졌다. 유럽연합(EU)과 일본의 전기차도 보조금 대상에서 완전히 배제됐다.

현대차와 기아, 올해부터 미국 현지공장 생산 전기차의 경우 보조금 받을 수 있어

[사진=연합뉴스TV 캡처]
[사진=연합뉴스TV 캡처]

트럼프가 재집권에 성공해 IRA를 폐지할 경우 현대차·기아의 손익계산서를 예측하기는 쉽지 않다. 득실 계산이 복잡하기 때문이다. 지난해까지는 피해를 보는 입장이었다. 미국에서 조립된 전기차만 보조금을 지급하도록 돼 있기 때문에 현대차·기아는 보조금을 받지 못했다

북미 전기차 시장에서 보조금을 받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현대차·기아는 지난해 역대급 영업이익을 달성해 삼성전자를 제치고 나란히 영업이익 1,2위를 각각 차지했다. 지난해 영업이익 추정치는 현대차 15조원, 기아 10조원, 삼성전자 6조원 규모이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미국 현지생산 전기차들의 출시가 예정돼, IRA 보조금 지급에 따른 판매 상승이 기대되는 상황이다. 미국 조지아주 전기차 전용 공장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는 연간 30만대 이상의 생산능력 기준으로 건설중이다. 이르면 3분기부터 가동된다. 기아는 미국 조지아주 웨스트포인트 공장에서 EV9을 생산한다. 이들 현지공장에서 생산되는 전기차들은 “미국에서 최종 조립된 전기차에게만 보조금을 지급한다”는 IRA 조항을 충족시키게 된다. 조지아주의 현대차 공장과 기아 공장에서 생산된 전기차는 상당한 수익성 향상을 가져다 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현대차와 기아가 헛수고해?...어차피 미국기업을 위한 IRA 폐지는 현대차 등에게 ‘이익’?

이런 상황에서 IRA가 폐지된다면, 현대차·기아는 미국 내 공장 설립에 따른 이익도 거두지 못한 채 ‘헛수고’만 한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현대차가 현실적으로 IRA 기준을 충족하기는 어려운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21일(현지시간) 미국 관보에 따르면, 현대차는 배터리 제조 때 특정 광물이 차지하는 비중이 작으면 외국우려단체(FEOC) 규정에서 예외를 두는 ‘최소 허용 기준’을 현재 2%에서 10%로 높여달라는 내용을 담은 의견서를 미국 정부에 제출했다. 흑연 등 전기차 배터리에 들어가는 중국산 광물을 써도 IRA 보조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구이다. 핵심 광물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높은 비중을 감안해달라는 것이다. 삼성SDI도 원산지 증명 제외 핵심광물에 흑연을 추가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대차뿐만 아니라 미국 기업들도 IRA 기준에 대해 대폭 완화를 요청하고 있는 실정이다. GM이나 테슬라도 원산지 증명의 불가능성, 원산지 증명 소재 명단 구체화 등을 요청하고 있다. 미국기업과 외국기업이 한 목소리로 IRA의 조항들이 산업계 현실을 무시한 조치라는 판단을 내리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트럼프가 IRA를 폐지 혹은 대폭 축소할 명분은 충분한 것이다.

트럼프가 재집권해서 IRA를 폐지하거나 축소할 경우, 미국에 생산공장을 세운 현대차와 기아는 ‘헛수고’를 한 측면도 있다. 하지만 ‘미국 우선주의’를 추구하는 트럼프가 미국 현지에 생산공장을 건립한 외국 기업에게 혜택을 부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IRA 폐지나 축소가 현대차와 기아 그리고 국내 배터리 3사에게 종합적으로 볼 때 이익이 될 가능성도 점쳐진다. 국내 기업들이 아무리 노력을 해도 IRA에 대한 혜택은 미국 기업들에게 더 많이 돌아가도록 설계돼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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