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병원,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세브란스병원, 서울성모병원 등 소위 ‘빅5’의 전공의들이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을 저지하기 위해 오는 20일 오전 6시 이후부터 ‘근무 중단’에 돌입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해당 병원 전공의들은 19일까지 모두 사직서를 제출하기로 했다. 의사는 파업을 할 수 없다는 현행법 체계를 지키기 위한 준법투쟁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장은 지난 16일 빅5 병원 전공의 대표들과 논의해 이 같이 결정했다.

전국의 의대생들도 20일부터 동맹휴학에 돌입할 예정이다.

대한 의협 비대위, 전공의와 의대생 집단행동에 대한 전폭적 지지와 법률 지원 선언

17일 서울 대한의사협회 대강당에서 열린 의료정원 증원 저지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 제1차 회의에서 김택우 위원장 등 참석자들이 회의전 대화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17일 서울 대한의사협회 대강당에서 열린 의료정원 증원 저지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 제1차 회의에서 김택우 위원장 등 참석자들이 회의전 대화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대한의사협회(의협) ‘의대 정원 증원 저지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는 17일 이같은 전공의와 의대생들의 집단행동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 의사를 밝혔다. 이날 첫 회의를 열고 “면허 박탈을 예고하며 전공의의 자발적 사직이라는 개인 의지를 꺾는 (정부의) 부적절한 발언에 강한 유감을 표한다”며 “지속해서 겁박에 나설 경우 법적 조치에 나설 수 있음을 경고한다”고 밝혔다. 특히 “단 한 명의 의사라도 이번 사태와 연관해 면허와 관련한 불이익이 가해진다면 의사에 대한 정면도전으로 간주하고 감당하기 어려운 행동에 돌입할 수 있음을 강하게 경고한다”고 강조했다.

김택우 비대위원장은 “단체 행동은 하루 휴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무기한 파업(무기한 휴진)이나 ‘마지막 행동’을 말하는 것”이라면서 “마지막 행동은 2000년 의약분업 투쟁 때 전공의들이 여름에 나와서(집단행동을 시작해서) 겨울에 들어간 것을 말한다”고 설명했다. 비대위는 오는 25일 전국 대표자 비상회의와 규탄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빅5 의사 중 전공의 비중은 37%...전공의 88% 단체행동 참여 의사 밝혀

빅5 소속 의사 중 전공의 비중은 37% 정도로 추산된다. 5대 대형병원 의사들 가운데 전공의 비중은 약 37%다. 인턴과 레지던트 등으로 구성된 전공의는 응급·야간·휴일 업무에서 중추적 역할을 맡고 있다.

따라서 빅5 전공의들이 계획대로 병원 현장을 떠날 경우 지난 2020년에 버금가는 의료대란이 벌어질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이에 따라 환자 생명을 담보로 한 의료계의 투쟁을 둘러싼 사회적 논란이 가열될 전망이다.

원광대병원도 15일 22개 과 전공의 126명 전원이 사직서를 냈다고 밝히는 등 다른 수련병원들의 전공의들도 속속 사직서를 제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지난 15일 자정 기준으로 원광대병원 등 7개 병원에서 154명이 사직서를 제출했다는 게 정부 집계이다.

대전협이 전국 140여곳의 수련병원 소속 전공의 1만여명을 상대로 자체 설문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시 파업 등 단체 행동에 참여하겠다고 밝힌 비율은 88.2%에 달했다. 빅 5 전공의 중 참여의사를 밝힌 비율은 86.5%였다. 이 조사는 지난해 12월 30일부터 지난 3일까지 진행됐다.

세브란스병원은 기존 수술의 50%만 진행?...서울대병원은 폐암 수술, 서울성모병원은 뇌경색 수술 불가능해져

이미 수술 일정이 연기되는 등 의료대란 조짐이 발생하고 있다. 세브란스 병원은 지난 16일 오후부터 진료과별로 '수술 스케줄 조정'을 논의해달라는 내부 공지를 올렸다. 마취통증의학과는 전공의들이 집단 사직서를 제출한 뒤 근무를 중단하면 평소 대비 약 50∼60% 수준의 업무만 소화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거의 모든 수술에는 마취가 필수요소로 들어간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20일부터는 기존 수술 일정의 50% 정도만 진행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다른 빅5들도 수술과 입원 일정을 조정중이다. 서울아산병원, 서울성모병원 등 다른 대형병원들도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에 대비해 환자들의 수술과 입원 등을 조정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서울성모병원은 뇌경색·뇌출혈 수술이 불가능하다고 공지했고, 서울대병원은 폐암 등 수술 연기 사실을 알렸다.

폐암 수술 연기된 환자의 아들, “환자 생명으로 자기 밥그릇 챙겨”...댓글 1천개 이상 달려

서울시의사회 소속 의사들이 15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정부의 의과대학 입학 정원 확대에 반대하는 궐기대회를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서울시의사회 소속 의사들이 15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정부의 의과대학 입학 정원 확대에 반대하는 궐기대회를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연합뉴스에 따르면, 경기북부의 한 병원에서는 A교수가 암환자 B씨의 수술 날짜를 20일로 잡았다가 무기 연기했다. 이날 전공의들이 수술실에 들어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 것이다. B씨는 2년간 항암치료를 받다가 마지막 상황에 몰려서 수술을 결정한 상황이다. B씨의 아들 C씨는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환자 생명으로 자기 밥그릇 챙긴다고 협박하는 게 의사가 할 짓인가요”라고 적었다. 이 글에는 전공의들의 집단행동을 비판하는 댓글이 1천개 이상 달렸다.

전국 40개 의과대학 대학생들도 20일부터 동맹휴학 추진

전국 40개 의과대학 중 35개 의대 대표 학생들도 지난 15일 회의를 열고 오는 20일부터 휴학계를 내기로 만장일치로 결정했다.

이어 지난 16일 밤에는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 비상대책위원회 임시총회를 열고 20일을 기점으로 각 단위의 학칙을 준수해 동맹(집단)휴학 및 이에 준하는 행동을 개시하기로 했다고 17일 발표했다. 의대협은 40개 의대 등이 참여하는 단체이다.

의대협은 15~16일 전국 의과대학생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90% 이상이 응답했고, 응답자의 90% 이상이 동맹휴학에 찬성 의사를 표명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한림대학교 의대 본과 4학년 학생들은 지난 15일 만장일치로 1년의 휴학을 의결했다.

이같은 의대생 동맹휴학 움직임과 관련해 교육부는 지난 16일 의과대학 교무처장들과 온라인 회의를 갖고 학생들의 휴학 신청이 들어올 경우, 요건과 처리 절차를 정당하게 지켜 동맹휴학이 승인되지 않도록 학사 관리를 엄정히 해달라고 강조했다.

2020년 의료대란 때와는 달리 의사 국가고시는 지난 1월 종료돼

의사 집단행동 중앙사고수습본부는 16일 조규홍 본부장 주재로 제9차 회의를 개최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조규홍 의사 집단행동 중앙사고수습본부장(보건복지부 장관)이 회의를 주재하는 모습. [사진=보건복지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의사 집단행동 중앙사고수습본부는 16일 조규홍 본부장 주재로 제9차 회의를 개최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조규홍 의사 집단행동 중앙사고수습본부장(보건복지부 장관)이 회의를 주재하는 모습. [사진=보건복지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박민수 의사 집단행동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 부본부장(보건복지부 2차관)은 16일 오전 정례 브리핑에서 의대생 동맹휴학 대처 방안에 대해 "휴학계를 내려면 학부모 동의서가 필요하다"면서 "(의대생) 가족들에 대한 설명, 이런 것도 저희가 해서 극단적인 집단행동이 일어나지 않도록 절차 관리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의대생 부모들이 휴학계 제출에 동의서를 써주지 말라는 요청인 셈이다.

박 부본부장은 의대생들이 1년 휴학을 강행할 경우 파급력에 대해 "졸업하고 의사 국시(국가고시)를 합격하면 인턴이 돼야 되겠는데 인턴 자원이 부족해지는 것이 예상하는 문제점"이라면서 "당장 진료에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의사 국가고시가 지난 1월에 합격자 발표자까지 마쳤다는 점도 2020년 의료대란 때와 다른 점이라는 설명이다.

의협 비대위, 정부가 내린 집단행동 교사 금지 명령을 사실상 묵살

정부는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전공의들의 집단행동으로 의료체계가 마비됐던 2020년의 의료대란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즉 의료계 반발에 밀려 의대 증원 계획을 철회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정부는 의사들이 집단행동에 나설 경우 의사면허 취소를 검토하겠다고 압박하고 있다. 또 전국 221개 수련병원 전체에 집단사직서 수리 금지를 명령했다. 이를 통해 전공의들이 집단사직서를 제출하고 사실상 파업에 돌입하는 사태를 사전에 방지한다는 계획이다. 아울러 대한의사협회(의협) 등 의사단체에는 집단행동 및 교사 금지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이같은 정부의 강경대응은 의료 현장에서 먹혀들지 않고 있는 분위기이다.

의협의 '의대 정원 증원 저지 비대위'는 17일 첫 회의에서 전공의 사직, 의대생 동맹휴학, 의대생·전공의 지원 계획, 향후 투쟁 추진 로드맵, 의료공백 사태 해결을 위한 정부 대상 조치 요구안 등을 논의했다. 정부가 의협에게 집단행동 및 교사 금지 명령을 내렸지만 의협은 이를 사실상 묵살하고 있는 상황이다.

의협 비대위, “정부가 때리는 대로 맞고 인내한 의사의 고통을 이제 끝내야”

비대위는 이날 투쟁선언문을 통해 "부당한 의료 정책을 이용해 정부가 때리는 대로 맞고 인내한 의사의 고통을 이제는 끝내야 한다"며 "정부만이 아니고 우리도 우리 스스로 의료 정책을 만드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나아가 "정부의 어떤 행위와 이간질에도 우리가 정한 목적을 이룰 때까지 대동단결하고 오직 하나로 뭉쳐 투쟁에 반드시 승리하자"고 당부했다.

특히 "정부가 일방적으로 의대 정원 규모를 정해 2020년 의협과 맺은 9.4 의정 합의서를 백지화했다"며 "의대 정원 확대가 미래 의료 체계에 미칠 엄청난 결과에 대해 깊은 고민 없이 정치권력의 압력을 그대로 수행하는 어리석음을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비대위에는 대전협 박단 회장도 위원으로 포함됐다. 박 회장은 지난 15일 자신의 SNS에 "수련을 포기하고 사직한다. 집단행동은 절대 하지 말아 달라"는 글을 올렸다. 집단행동이 아니라 사직방식을 채택해야 법적 처벌을 피할 수 있다는 설명인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의 마지막 카드는 ‘의사면허 취소’...집단행동 시작되면 ‘심각’으로 격상

정부가 가진 마지막 카드는 ‘의사면허 취소’이다. '의료법'에 따르면 의사들이 집단으로 진료를 거부하면 업무 개시를 명령할 수 있고, 이 명령에 따르지 않을 경우 1년 이하의 자격 정지, 3년 이하의 징역형 등에 처할 수 있다. 더욱이 개정된 의료법에 따르면, 어떤 범죄든 '금고 이상의 실형·선고유예·집행유예'를 선고받았을 때 의사 면허를 취소할 수 있게 했다. 의사들이 업무개시명령을 불이행해서 3년 이하 징역형을 선고받게 되면 의사 면허가 취소될 수 있는 것이다.

복지부는 지난 6일 의대 증원 규모를 발표한 직후 중수본을 설치하고, 보건의료 위기 단계를 '경계'로 상향했다. 위기 단계는 '관심·주의·경계·심각' 순이다. 박민수 복지부 제2차관은 "집단행동이 실행되면 '심각' 단계로 올려서 조치가 더 강화될 것"이라며 "현재 복지부 장관 중심의 중수본도 총리 주재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로 개편돼 더 강력한 리더십이 발휘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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