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대한의사협회(의협)가 의대증원을 둘러싸고 정면충돌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여론향배가 국민적 관심을 끌고 있다. 여론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쪽이 결국은 낭패를 볼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의대정원 확대 반대하는 의사들. [연합뉴스 자료사진]
의대정원 확대 반대하는 의사들. [연합뉴스 자료사진]

의협은 3일 오후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전국의사총궐기대회’를 개최했다. 연간 2천명씩 5년 동안 1만여명을 늘리겠다는 정부의 의과대학 입학 정원 확대 정책에 반대하는 대규모 집회를 통해 여론의 지지를 이끌어내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의협은 집회참여 인원을 2만명 정도로 예상했다.

‘전국 의사 총궐기 대회’ 앞두고 제약회사 직원 ‘강제 동원 의혹’ 불거져

그러나 이날 집회를 앞두고 의협 입장에서 볼 때 악재가 터졌다. 3일 집회에 제약회사 직원이 강제 동원된다는 의혹이 2일 제기돼 경찰이 사실관계 파악에 나섰다.

경찰청은 3일 오전 언론에 배포한 입장문에서 이날 오후 개최될 '전국 의사 총궐기 대회'와 관련해 "집단행동을 교사·방조하거나 일부 언론에서 보도된 제약회사 영업사원 참석 강요 의혹 등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엄정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경찰청 관계자는 "업무상 '을'의 위치인 제약회사 직원에게 '갑'인 의사들이 집회 참여를 요구했다면 엄연한 범죄 행위"라며 "형법상 강요죄와 의료법 위반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 같은 의혹이 경찰 조사를 통해 사실로 드러날 경우 관련자들에 대한 엄정조치가 불가피하다. 이는 의협과 의사들 전반에 대한 국민적 비판여론을 고조시킬 악재가 될 가능성이 높다.

‘여론 지지’가 정부와 의사 간의 정면대결 승부처...의대증원 여론이 압도적 우위

현재 의대증원에 우호적인 여론이 압도적인 우위를 보이고 있다. 한국갤럽이 2월 다섯째 주(27~29일)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1001명에게 윤석열 대통령의 직무수행 평가에 대해 질문한 결과에 따르면 긍정평가 39%, 부정평가 53%로 집계됐다. 긍정평가가 지난 2월 1주 29%, 3주 33%, 4주 34%, 5주 39% 등으로 꾸준한 상승 추세를 보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TV 캡처]
[사진=연합뉴스TV 캡처]

특히 긍정평가의 이유로 의대증원을 꼽은 응답자가 21%로 가장 많았다. 반면에 부정평가의 이유로 가장 높은 응답율을 보인 것은 경제/민생/물가 17%였다. 의대증원을 부정평가의 이유로 대답한 비율은 4%에 그쳤다.

한국갤럽이 지난달 13~15일 전국 성인남녀 1천2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응답자의 76%가 '의대 정원 2천명 증원'에 긍정 평가했다.

정부는 이처럼 다수 여론이 의대증원을 지지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단호한 대응책을 추진할 방침이다.

정부, ‘사흘간의 유예기간’ 부여하고 ‘단호한 처분’ 개시?...“2020년과 달리 구제조치 없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3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의사들의 대규모 집회에 제약회사 직원이 동원된다는 의혹과 관련해 "불법 행위에 대해서는 무관용 원칙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는 불이익 면제를 조건으로 정부가 정한 전공의 복귀 '데드라인'(2월 29일)이 지나면서 연휴가 끝나면 미복귀 전공의에 대한 본격적인 행정처분과 사법절차를 개시할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4일부터 전공의 복귀 현황을 파악해 처분 절차에 들어갈 예정이다. 현장에 나가 채증을 통해 업무개시명령 위반 사실이 확인된 전공의들에게 대한 처분에 들어간다는 계획이다.

지난달 29일 오후 5시 현재 100개 수련병원 기준으로 의료 현장에 복귀한 전공의는 총 565명으로 전체 1만3천명의 4.3%에 불과하다. 전체의 90% 이상인 미복귀 전공의를 모두 법대로 처분하기에는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복지부는 따라서 연휴 기간 복귀한 이들에 대해서는 추가로 판단한다는 입장이다. 연휴까지도 복귀하지 않은 전공의들에 대해서는 원칙대로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당초 발표한 것보다 ‘사흘간의 유예기간’을 추가로 부여한 셈이다.

단 일단 처분이 내려지면 2020년 의사 집단행동 당시와는 달리 이번에는 구제조치가 없을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최근 한 방송에 출연해 "앞선 구제 조치 때문에 의료 개혁이 지연됐다고 생각한다"며 "이번에는 그런(구제) 계획이 없다"고 강조했다.

[사진=연합뉴스TV 캡처]
[사진=연합뉴스TV 캡처]

중대 국면 앞두고 ‘여론전’ 치열...정부는 의사의 본분 강조하는 동영상 제작해 업로드

이처럼 전공의 집단행동 지속여부를 가늠해줄 중대 국면이 임박한 상황에서 정부와 의사들간의 여론전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는 의사들이 등장하는 유명 드라마의 대사를 활용한 동영상을 제작해 “의사가 사람을 살리고 환자를 돌보는 직업”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를 통해 집단행동 중인 전공의들의 복귀를 호소하는 한편 국민여론의 지지를 얻으려는 전략이다.

3일 정부에 따르면, 대한민국정부 계정의 유튜브 채널이 지난달 29일 업로드한 '우리 곁으로 돌아와 주세요 #we_need_U' 제목 영상은 지난 2일 저녁까지 조회수가 40만회를 넘겼다.

이 영상은 “환자들에게 인생에서 가장 큰 일이고 가장 극적인 순간이야. 그런 순간에 우리를 만나는 거야”(슬기로운 의사 생활), “가장 중요한 건 절대 환자보다 먼저 포기하지 않는 거야”(하얀거탑) 등의 명대사를 소개하고 있다. '낭만닥터 김사부'는 “결국 우리가 하는 일은 다치고 아픈 사람 치료해 주는 일이야. 시작도 거기고 끝도 거기여야 돼”라고 말하고 있다. 이런 영상에 달린 댓글에는 의료대란 상황을 전하면서 전공의 복귀를 요청하는 내용이 다수였다. 의사들 입장에서 의대 증원 정책을 비판하는 글은 소수였다.

‘의새 챌린지’= 박민수 2차관의 발언 취지에는 눈감고, 잘못된 발음을 빌미로 ‘밈’을 유포

반면에 의사들은 SNS를 중심으로 '의새 챌린지'를 유행시키고 있다. 의사와 새를 합성한 '밈'(Meme·인터넷 유행 콘텐츠)으로 만들어 유포시키거나 프로필 사진을 ‘의새’로 교체하는 방식이다. 의사를 비하하는 표현인 '의새'를 동원해서 자신의 처지를 자조적으로 표현하는 동영상을 퍼뜨리고 있는 것이다.

​[사진=젊은의사회 인스타그램 캡처]​
​[사진=젊은의사회 인스타그램 캡처]​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이 지난달 19일 브리핑에서 실수를 한 게 발단이 됐다. 박 차관의 ‘의사’ 발음이 의사를 비하하는 ‘의새’로 들렸다는 것이다. 당시 박 차관은 “독일, 프랑스, 일본에서 의대 정원을 늘리는 동안 의사들이 반대하며 집단행동을 한 일은 없다”라고 말하는 과정에서 ‘의새’로 들릴 수 있는 발음을 했다고 한다. 이와 관련 복지부 관계자는 “한국이 아닌 해외의 의사에 대해 말하는 대목이었다”면서 “브리핑 중 의사를 많이 언급했는데 딱 1번 발음이 잘못 나온 것이다. 차관이 격무에 시달려 체력이 떨어지며 실수한 것을 두고 인신공격을 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설명했다.

박 차관의 발언은 독일, 프랑스, 일본 등의 선진국에서 의대증원을 할 때 의사들이 과격한 집단행동으로 반대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이러한 발언 취지는 묵살하고 잘못된 발음을 빌미로 자조적인 밈을 유행시키려는 일부 의사들의 행태에 대한 여론은 우호적이지 않다. 박 차관이 손가락으로 달(독일 등의 의사는 의대증원해도 집단 행동 안함)을 가리켰는데 달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그 손가락이 잘못됐다고 비난하는 격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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