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우 북한인권시민연합 이사장
김석우 북한인권시민연합 이사장

 

한국 역사에 결투가 있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서양에서는 결투가 다툼을 해결하는 중요한 방법이었다. 모욕당한 사람이 장갑을 벗어 던지면, 상대방이 그 도전을 받아들여 결투가 성립한다. 심판관을 두고 결투를 벌인다. 초기에는 칼로 하였으나 후에는 총으로 많이 하였다. 

  미국의 서부개척 시대 사나이들의 결투는 수많은 영화의 주제였다. ‘OK목장의 결투’, ‘하이 눈’과 같은 명화에 관객들이 감동하였다. 악당이 야비한 수단을 쓰기도 하지만, 정의의 편인 주인공이 목숨 걸고 당당하게 결투에 나선다. 정면으로 대결한다. 뒤에서 쏘는 건 사나이가 아니다. 비겁하고 창피한 짓이다. 그렇게 서양 사회는 명예를 중시하는 문화가 발전하였다. 명예가 짓밟혔다면 결투를 신청한다. 대단한 용기다.

  조선시대의 당쟁은 왕의 신임을 얻어 권력을 차지하려는 치열한 싸움이었다. 서양의 결투와는 다른 방법을 썼다. 많은 경우 붕당 안의 모의와 모략으로 상대편을 궁지에 몰아넣어 목적을 달성하였다. 왕실의 어른이 사망할 때 그 인척이 상복(喪服)을 얼마 동안이나 입어야 하는가와 같은 의례 문제를 놓고 당파끼리 죽기 살기로 논쟁을 벌인다. 문제의 사소함에 비하면, 어마어마한 의미를 부여해서 상대편을 꺾을 구실로 삼는다. 음습한 음모와 결탁으로 상대편을 공격한다. 양반들이 공자 맹자를 가르치던 서원(書院)이 당쟁을 통한 여론 형성의 중심이었다. 

  논쟁이 심했기에 욕설도 발달한 것 같다. 서민사회에서는 쌍욕이 매우 발달하였다. 시중에서 싸움판이 벌어져 주먹다짐도 하지만, 그에 앞서 쌍욕을 서로 퍼붓는 게 보통이었다. 다행히 말로 하는 욕 싸움 덕분에 살상을 줄이는 효과는 있었던 것 같다. 그에 비교하면 일본말에는 욕설이 흔하지 않다. ‘바카야로(馬鹿野郎 ばかやろう)’, 우리말로 ‘바보’라는 욕이 심한 축에 든다. 심한 욕을 했다면, 말싸움하기에 앞서 칼을 먼저 빼었을 거다. 무사들이 사람 목숨을 가볍게 본 일본의 문화를 저급하다고 볼 수도 있다. 세련되게 상대방을 설득하기보다는 완력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투박한 행태랄까? 

  한국과 일본은 역사상 큰 차이가 ‘봉건시대’를 겪었는지 아닌지다. 일본의 봉건제도는 유럽의 제도와 거의 같은 특징을 가졌다. 영주가 가신(家臣) 사무라이들과 함께 거주하는 성을 중심에 두고, 외적을 막기 위해 해자(垓字, water hazard)를 이중으로 구축하는 것까지도 그러하다. 신분도 대를 이어 세습되었다. 그 밖에도 많은 제도가 서로 비슷하다. 태평양 전쟁 패전 후 미군의 점령과 13세기 초 여몽(麗蒙)연합군의 하카다(博多) 상륙을 제외하곤 외부 세력의 침략이 없었다. 

  그만큼 일본 사회는 변화 없이 지속되었다. 그런 사회에서는 마을에서 쫓겨 나는 게 가장 두려운 벌이다. 그래서 서로 약속을 잘 지키고 질서도 잘 유지한다. 일본이 범죄율 낮은 신뢰사회가 된 배경이라 할 수 있다. 

  일본에 비하면 한국은 크게 다르다. 근대에 들어와 일본의 식민 통치나 6.25 전쟁과 같은 격변으로 사회 질서가 뒤흔들린 결과였을 게다. 예부터 내려오던 전통이 파괴되고, 위계질서가 뒤바뀌는 변혁이 일어났다. 길게 보면 모든 구성원이 평등해지는 민주화 과정으로 볼 수도 있지만, 당대의 사람들은 큰 혼란을 겪었다. 무너지는 질서가 사회를 불안정하게 만들고 범죄를 부추기기도 하였다. 그래서인지 신용과 관계되는 범죄, 즉 사기, 횡령, 무고와 같은 범죄는 일본보다 몇십 배나 많다. 

  다행히 건국 대통령 이승만이 은둔의 나라 조선에 국제사회의 물결로 세례를 주었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기본으로 국가를 세웠다. 교육에 힘을 기울여 단시일 내에 문맹을 퇴치하였다. 일찍이 여성도 평등한 권리를 갖게 하였다. 그러한 선각자적인 개혁, 그리고 박정희 대통령의 근대화 추진으로 오늘날 10위권의 경제력, 6위권의 국력을 만들었다. 하루아침에 모든 국민이 일류 시민의식을 갖기는 어렵기에 선진사회에 비하면 신용범죄가 아직도 범람한다. 하지만 사회 전체로서는 엄청난 변혁을 이루었다. 

  이제는 시스템으로서의 한국 사회 질서가 안정되어야 한다. 아직도 장애물은 곳곳에 널려있다.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아져서 소아(小我)의 이익만을 챙기려는 샛길에서 벗어나서 대의(大義)의 큰길로 힘을 합쳐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기본이 있다. 공정과 상식이다. 합리주의 사고가 더 확산하여야 한다. 하나 더하기 하나가 둘(1+1= 2)이 되는 논리가 통용되어야 한다. 목소리 큰 사람이 떼를 쓴다고 해서 이끌려 다니는 사회여서는 안 된다. 지난날 정권이 무리하게 강압 통치했을 때는 국민의 저항권이 정당화되었다. 부정 선거에 항거한 4.19혁명, 대통령 직선제를 요구한 87년 6월 항쟁이 그것이다. 한국 사회는 이제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국민의 의사를 반영하는 절차적 민주주의가 확립되었다. 

  지금 남아있는 걸림돌은 민주적 절차를 무시하고 자기주장을 무리하게 관철하려는 세력이다. 86 운동권 인사들이다. 90년대 망해버린 마르크스 레닌주의에 심취해서 아직도 북한 수령체제를 추종하려 한다. 북한 주민의 자유와 인권보다는 김씨 일가의 비위를 우선해서 맞추려 한다. 위헌 정당으로 해산된 구 통진당 세력마저 끌어들이려 한다. 

  누구나 판단에 잘못을 범할 수 있다. 잘못을 알게 되면 진솔하게 반성하면 된다. 그런데도 억지나 궤변으로 변명하려 한다. 그럴수록 논리가 엉켜서 벗어나기 힘들어진다. 한국의 많은 정치인이 자기변명을 궤변으로 넘기려 하고, 심지어는 속임수나 말 뒤집기를 밥 먹듯 하고 있다. 범죄 경력이 훈장처럼 된 사람도 있다. 이념 갈등 속에서 자기 편향적 사고가 강해지면서 팬덤을 기반으로 하는 지지세력은 거짓말이라도 따라다닌다.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하더라도 눈감고 박수를 친다. 나라를 망하게 하는 지름길이다. 

  이제 상식과 공정이 통하는 사회로 발전해야 한다. 서양의 결투처럼 정정당당하게 맞서는 용기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순간적인 이익을 위한 반칙이나 거짓말이 통하게 해서는 안 된다. 목표를 위해서 수단이나 과정은 어찌 되어도 괜찮다는 사고를 막아야 한다. 손자병법에서처럼 온갖 술수와 속임수를 쓰거나 말장난으로 상대방을 쓰러뜨리게 되면 정의는 설 자리가 없다. 야바위꾼들을 위한 세상이 된다. 김대업 병풍 사기, 반미 촛불사태, 광우병 난동, 천안함 괴담, 세월호 사건에서와 같이 허위와 선동이 나라를 또다시 뒤흔들어서는 안 된다. 

  거짓말과 속임수를 생활화한 인물들이 세속적으로 성공할수록 나라의 장래가 위험해진다. 일반 국민보다도 도덕적 수준이 낮은 정치인들이 난장판을 만들게 해서는 안 된다. 손해가 되더라도 원칙을 존중하고 명예를 지켜야 한다. 그렇게 해야 진정한 선진사회, 선진국이 될 수 있다. 

  지금 4월 총선을 앞두고 한쪽이 1대1로 토론하자고 제의하였다. 국민이 보는 앞에서 사나이답게 정정당당하게 결투해 보자는 도전이다. 다른 쪽이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피해 다니고 있다. 자신이 없어서인가? 명예는 어찌 되어도 괜찮다는 생각인가? 

김석우 북한인권시민연합 이사장(전 통일원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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