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총선에서 하태경 의원과의 치열한 경선 끝에 국민의힘 서울 중·성동을 후보로 공천돼 화제가 된 이혜훈 전 의원은 얼마전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자신이 이곳에 출마하게 된 사정을 설명했다.

“갑자기 공천 그림을 그린다고 알려진 분이 불러서 ‘우리 후보가 사퇴했으니 당을 위해서 나오라’고 했다.”

이 전 의원은 자신이 말한 “공천 그림을 그린다고 알려진 분”이 누군지는 밝히지 않았다. 공천 그림 그리는 분’이란, 공천 과정에 결정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숨은 실력자’란 의미다.

조심스러운 표현을 썼다고는 하지만, 이런 ‘보이지 않는 손’의 존재를 언급한 것은 한동훈 비대위원장이나 정영환 공천관리위원장, 장동혁 사무총장이 국민의힘 공천과정에서 그토록 강조해온 ‘공정한 시스템’이라는 말을 무색케하는 천기누설에 가깝다.

이번 총선을 앞두고 국민의힘 공천경쟁은 지난해 초 전당대회때 사실상 시작됐다. 당시 김기현 당 대표를 밀었던 많은 사람들은 그를 당 대표로 만들어서 자신들의 공천을 수월하게 하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인요한 혁신위원장의 혁신바람에 휘말려 김기현 대표가 낙마하고 한동훈 비대위원장 체제가 들어서면서 그들의 희망도 사라졌다. 한동훈 위원장은 공천에 관한 당무를 총괄하는 장동혁 사무총장을 직접 골랐고 공관위원 선정도 한 위원장의 주도로 이루어졌다.

친윤 핵심으로 꼽히는 이철규 의원은 김기현 대표 체제에서 당 사무총장으로 활동하다가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의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하지만 한달도 안돼 인재영입위원장으로 임명돼 큰 관심을 끌었다.

이철규 의원의 인재영입위원장 임명은 용산 대통령실을 비롯한 친윤계가 총선을 앞두고 공천작업의 주도권을 쥐기 위한 것으로 받아 들여졌다. 민주당 뿐 아니라 당내에서도 이철규 인재영입위원장 임명을 두고 “용산 대통령실 및 검찰 출신들을 공천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동훈 비대위원장 체제가 들어섰는데, 한 위원장은 자신이 인재영입위원장직을 이 의원과 함께 공동으로 수행할 것임을 선언했다. 한 위원장의 비대위원장 취임에 앞서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가 직접 인재영입위원장직을 맡아 후보 영입 업무를 챙기는 상황이었다.

한 위원장은 이철규 의원의 인재영입위원장직을 해촉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업무의 연속성 유지 및 그동안 인재영입위원회가 만든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윽고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가 구성되자 이철규 의원은 당내 인사로 장동혁 사무총장, 이종성 의원과 함께 공관위원이 됐다.

여야, 시대를 불문하고, 주요 정당의 공천작업이 시작되면 공천에 사활을 건 사람들은 ‘줄’을 찾기 위해 안간힘을 써왔다.

한동훈 위원장 가족 친지의 전화번호를 수소문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장동혁 사무총장에게도 매달려 봤지만 별무소득. 정영환 위원장 등 외부 공관위원들은 아예 전화조차 받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이철규 의원은 하위 10%, 컷오프에 걸린 의원들의 하소연을 받아주고 동료 의원들의 공천상담을 들어주는 유일한 공관위원의 역할을 했다. 더 나아가 이번 국민의힘 공천과정에서 용산 대통령실 출신 거의 대부분이 경선까지 진출할 수 있었던 데는 그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공관위의 특정지역 공천심사에서 결론이 쉽게 나지 않는 상황 중 상당수는 이철규 의원과 나머지 공관위원들 간의 의견차이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런가하면 어느 지역에서 누군가가 “나의 공천은 이미 예정돼 있다”며 허장성세(虛張聲勢)를 부려서 배경을 추적해보면 이철규 의원의 이름이 거론되는 경우가 많았다. 실제 수도권의 한 지역에서는 서로 다른 후보가 지지자들에게 공공연하게 이 의원의 이름을 팔면서 “나를 밀어주고 있다”고 자랑하기도 했다.

현역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한 한 지역에서 한 공천신청자는 “이 의원으로부터 찾아가 보라는 연락을 받았다”면서 문제의 불출마 현역의원을 찾아가는 광경도 벌어졌다.

국민의힘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 비례대표 명단이 확정되자 이철규 의원은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표면적으로는 “당을 위해 헌신해온 분들에 대한 배려는 찾아보기 힘듭니다”라고 했지만, 용산 대통령실 또는 이 의원이 개인적으로 밀었다는 사람들이 당선권에서 대거 밀려난데 따른 것이라는 반박이 나왔다.

이철규 의원은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영입한 김경율 비대위원에 대해 김건희 여사 비난 발언을 문제삼아 불출마를 압박, 관철시킨 바 있다. 그러자 이번에는 김경율 위원이 이 의원을 직격했다. 이철규 의원의 비례대표 반발은 “왜 내가 심으려는 사람들이 (비례대표 명단에) 없냐”는 투정이라는 것이다. 이의원이 이런 발언을 할 만한 떳떳함이 있는지 여부를 떠나,결국 선거에서 이겨야 논공행상이 가능해지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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