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는 시험과 같아 벼락치기 공부 역할은 미미할 수밖에
한국 정치 지형에선 중요한 기본과목이 존재
국민 설득 못하는 우파의 무능력, 무기력, 전망 부재
우파는 이념적 패배자의 위상에서 벗어나야
좌파와 구별되는 우파의 언어, 메시지 없다면 정치 때려치우라

주동식 객원 칼럼니스트
주동식 객원 칼럼니스트

4·10 총선 판세가 요동치고 있다. 지난해 연말 아니 올해 연초까지도 더불어민주당 압승이 점쳐지던 판세가 2월 들어 슬슬 분위기가 바뀐다 싶더니 이른바 비명횡사 친명횡재(非明橫死 親明橫財) 공천 논란이 불거지며 민주당 지지율이 급락했다. 반대로 국민의힘은 시스템 공천을 내세워 별다른 잡음 없이 무난하게 승리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하지만 3월 들어 분위기는 다시 한번 뒤집어졌다. 결정적인 계기는 조국이 주도한 조국혁신당의 등장이었다. 조국혁신당 창당 이전에 민주당의 지지자들은 이재명의 사법 리스크에 따른 도덕성 부담에다 공천 파행으로 민주당을 지지할 명분을 찾지 못한 상태였다. 투표에 참여할 동기가 약했던 것이다. 하지만 조국혁신당의 비례대표를 지지한다는 명분이 등장하면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민주당의 지역구 후보까지 지지한다는, 지민비조(지역구는 민주당, 비례대표는 조국혁신당) 구도가 만들어졌다. 조국혁신당이 민주당 지지에 대한 심리적 거부감을 무너뜨리는 효과를 발휘한 것이다.

하지만, 조국혁신당은 어디까지나 표면적인 명분을 제공했을 뿐, 민주당 역전의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다. 민주당 역전의 가장 중요한 계기는 임종석의 당 잔류였다. 친문과 친명이 갈라지고 나아가 당이 사분오열될 수도 있었던 공천 파동이 김영주와 홍영표, 설훈 등 최소한의 이탈로 수습될 수 있었던 결정적인 계기였던 것이다. 임종석이 당에 눌러앉으면서 박용진 등 다른 거물(?) 비명계 정치인들의 탈당 러시를 막고 당의 구심력을 강화할 수 있었던 것이다. 바로 이런 조직력이 민주당 지지율 회복의 진짜 이유였다고 봐야 한다.

민주당이 공천 파문을 최소한의 충격으로 막을 수 있었던 데에는 문재인과 이해찬의 영향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의 뒤에서 또 다른 힘이 작용했을 수도 있지만, 그 부분은 아직 명확하지 않다. 일각에서는 중국과 북한의 영향력을 거론하기도 한다. 2023년 6월 8일 이재명이 주한중국대사관저에서 싱하이밍 중국대사를 알현(?)한 사례 등을 돌이켜보면 완전히 허황된 관점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하지만 민주당이 공천 파문을 최소화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힘은 좌파 특유의 이념적 동질성이다. 주체사상을 중심으로 강력한 이념적 동질성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민주당원들과 지지층은 그 이념에 근거한 강한 규율과 위계질서를 받아들일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규율과 위계질서가 민주당을 포함한 좌파 진영 전체에 원심력보다 구심력이 강해지는 배경이 된다. 좌파의 이념적 골간인 마르크스 레닌주의가 관념론적 세계관에 근거하여 위에서부터 체계적으로 설계한 이념이라는 점도 이런 규율과 위계질서의 형성에 강한 영향을 끼쳤다.

반면 국민의힘은 이런 이념적 동질성이 매우 약하다. 원래 우파의 정치 철학은 위에서부터 설계해 내리꽂는 정교한 세계관이나 이념과는 거리가 멀다. 이런 이념적 취약성은 다른 모든 변수를 뛰어넘는, 우파 진영 전체의 결정적인 약점이다. 이 약점을 뛰어넘지 못하면 국민의힘을 포함한 우파 진영은 앞으로 닥칠 모든 선거에서 열세를 면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우파 진영은 이 문제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선거는 시험과 같다. 그리고 중요한 시험이 다가오면 벼락치기 밤샘 공부에 매달리는 학생들이 많다. 하지만, 시험 성적을 결정하는 것은 평상시 얼마나 착실하게 공부해 실력을 쌓았는가 하는 점이다. 그런 평상시 노력에 비하면 벼락치기 밤샘 공부의 역할은 미미할 수밖에 없다. 선거도 마찬가지다. 지금 공천이 어떻고 선거 전략이 어떻고 하는 논란은 모두 시험을 2~3일 앞두고 벼락치기 밤샘 공부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두고 옥신각신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국민의힘이 평상시 치중했어야 할 핵심 과목은 어떤 것일까? 당연히 외교와 국방, 경제 등이 가장 중요한 과목이다. 선거는 이런 국정 운영 항목들에 대한 유권자들의 평가라고 봐야 한다. 특히 총선이 그렇다. 흔히 대통령 선거가 미래를 지향하는 선거이고, 총선이 과거의 성적 즉 대통령과 정권이 이룩한 업적에 대한 평가라고 불리는 이유가 이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정치 지형에서는 국정 운영보다 훨씬 중요한 기본 과목이 존재한다. 바로 5.18 등 좌파의 핵심 무기 역할을 하는 상징자산과의 싸움 즉 이념 투쟁이 그것이다. 이런 이념적 우열이 선거의 승부를 결정짓는 구도가 1987년 체제에서 계속 강화되어 왔다. 이 이념 투쟁의 중요성은 평상시에 잠복해 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튀어나와 정치적 승부를 결정하곤 한다. 윤석열 정부의 경우가 가장 극단적이다.

윤석열 정부의 등장은 문재인 정권을 통해 극대화된 좌파의 패악질에 대한 국민의 분노 때문이었다. 이 정권 교체를 계기로 좌파 패권은 큰 타격을 입었지만, 여전히 막강한 위력을 갖고 있다. 0.7%p 차이에 그친 대선 승부 그리고 대선 이후에도 사실상 그 결과를 부인하고 정권과의 전면전에 나선 좌파들의 행태 그리고 그들에게 아직도 엄청난 지지를 보여주는 국민들의 의식에서 이런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정권 교체 이후 민주당이 보여준 발악적 행태는 일일이 열거하기가 힘들 정도이다. 가장 단적인 사례가 국회에서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민주당의 입법 횡포이다. 노란봉투법, 방송 3법, 양곡관리법 등 윤석열이 거부권을 행사한 법률안들이 그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 법률안들이 불러올 심각한 부작용은 민주당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문재인이 정권을 잡고 있을 때는 적극적으로 추진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 법률안 통과는 오직 윤석열의 거부권 행사를 유도해 정치적 부담을 안기겠다는 민주당의 정략적 의도에 불과하다. 이태원참사특별법이나 쌍특검법 등도 마찬가지이다.

반면 윤석열 정부가 국가 경제를 회복시키겠다고 추진한 법률안을 민주당은 족집게처럼 골라내 차단했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이래 2023년 말까지 국회에 제출한 법안 총 363건 중 국회를 통과한 법안은 106건으로 통과율이 29.2%에 불과하다. 반면 문재인 정부의 법안 통과율은 61.4%였다. 문재인 정권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법률안 통과율이 윤석열 정부의 처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재명이 노골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민주당 사당화(私黨化)도 심각한 수준이다. 한마디로 말해 지금 민주당은 정당이라고 불러주기도 민망한 수준이다. 이런 행태가 국민들의 정치적 판단에도 영향을 주어 2월의 지지율 추락을 초래했다고 봐야 한다. 하지만 이런 효과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민주당의 지지율이 치솟고 국민의힘 지지율은 정체 또는 하락 현상을 보인 것이다. 여기에 한국 정치의 이념적 지형의 비밀이 숨어 있다.

국민의힘 지지율 추락의 원인으로 조국혁신당, 이종섭 황상무 사태, 의료대란 등이 많이 거론되지만 이 정도는 어느 선거 어느 정당 어느 정권에서나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평범한 사건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국민의힘은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 이 사건들이 이재명과 민주당이 정권 교체 이후 2년 가까이 저질러온 온갖 국정 방해 행위와 비교가 되나? 사실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만큼 민주당의 행패가 심각했다는 얘기이다.

이재명 시절만의 문제가 아니다. 문재인 정권 시절까지 포함하면 7년 아니 1987년 체제 성립 이후 30년 넘게 아니 이 나라 건국 이후 한 세기 가깝게 좌파 세력이 저질러온 국가 파괴 행위를 국민의힘의 실수와 비교해야 한다. 도대체 국민들의 건강한 상식은 어디로 갔나? 민주주의란 평범한 다수 대중의 건강한 양심과 판단력에 대한 신뢰를 전제로 성립한다. 한국에서 민주주의는 지금 심각한 위기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하지만, 이 문제는 근본적으로 국민들에게 책임을 돌릴 사안이 아니다. 민주주의 체제가 아니더라도 결국 정치의 정당성은 평범한 민중들의 판단에 의해 결정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임금은 배고 백성은 물이라는, 백성이 분노하면 배는 언제든지 뒤집힐 수 있다는 군주민수(君舟民水)라는 고사성어에 담긴 뜻도 그것이다. 문제는 결국 국민들을 설득하지 못하는 우파들의 무능력과 무기력, 전망 부재에 있다고 봐야 한다.

우리 사회는 이념적으로 심각한 편향성을 드러내고 있다. 정상적인 자유민주주의 체제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이다. 그 배경은 결국 1987년 체제에서 찾아야 한다. 좌파들의 정치적 승리로 성립한 1987년 체제에서 우파는 정치적 패배자의 위상을 갖고 있으며, 정치적 패배자는 정치적 정당성에서 심각한 약점을 갖게 된다. 우파는 사소한 실수나 흠결에도 엄청난 타격을 입고 좌파는 온갖 막장 행태를 보여줘도 별 타격을 받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치적 승리자인 좌파가 정치적 정당성의 근원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이 사실을 잘 보여준 게 도태우 등의 공천 취소 사태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은 취임하면서부터 당직자와 당원, 총선 예비후보 등에게 말조심할 것을 신신당부했다. 바로 이런 이념적 정치적 열세를 고려한 당부였을 것이다. 그 뜻과 의도는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런 당부는 아무 의미도 효과도 없다. 애초에 잘못된 접근이다.

국민의힘의 지지 기반이 우파 시민들인 이상 공직선거 후보도 우파 성향일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다면 그게 더 문제다. 그들이 5.18을 비롯한 좌파 패권에 대해 분노하고 문제 의식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필자는 5.18 당시 북한군이 왔다는 광수론 따위를 믿는 게 아니다. 그건 근거 없는 헛소리에 불과하다는 의견을 이미 여러 차례에 걸쳐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그 문제와 5.18이 성역화되어 좌파의 이념적 흉기가 된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상황에 대해 우파가 철저한 패배의식에 젖어 저항할 생각조차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파가 발언의 수위를 조절하고 표현을 조심하면 문제가 안 생기고, 좌파의 공세가 약해질까? 전혀 그렇지 않다. 좌파는 정책 능력도 한심하기 짝이 없고 현실적인 문제 해결 능력을 보여준 적이 거의 없다. 결정적으로 이념 성향 자체가 반(反)대한민국이다. 정상적으로 정치를 하면 이들은 정치적 존립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들이 온갖 루머와 헛소문을 무기로 삼을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이유가 이것이다. 광우병 난동, 세월호 발악 등이 단적인 사례이다. 이런 사례는 너무 많다.

이런 좌파가 5.18 등 이념적 무기의 사용을 포기한다? 그럴 리 없다. 우파가 아무리 말조심해도 소용이 없다. 오히려 그렇게 움츠러들수록 좌파는 더욱 기세등등하게 없는 사건도 만들어내게 된다. 지금까지 역대 선거에서 좌파의 이런 공세가 없었던 경우가 한 번이라도 있었는지 돌이켜보면 알 수 있다. 김대업을 이용한 악의적인 공격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우파는 이념적 패배자의 위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좌파의 공세를 두려워하며 애초부터 좌파 언론이나 지식인들이 정해주는 가이드라인을 신주단지처럼 모시며 거기에 따르려고 하는 태도 말이다. 이런 태도를 보인다고 해서 좌파 대중이 국민의힘을 지지해줄까? 어림도 없다. 역으로 우파 대중들이 실망하거나 자신감을 잃어 투쟁력을 상실할 뿐이다. 이게 1987년 체제 내내 진행된 과정이기도 하다. 이런 관행을 벗어나지 못하면 우파는 답이 없다. 중도 역시 스스로의 정치적 정당성을 부정하고 시작하는 정치세력을 지지해줄 이유가 전혀 없다.

지금부터라도 5.18을 핵심으로 한 좌파 상징자산의 위력을 무너뜨리는 작업에 나서야 한다. 그건 지금 대한민국을 사실상 지배하고 있는 호남과 주사파의 정치적 권위를 무너뜨리는 작업이다. 이 작업은 반드시 필요하다. 호남-주사파 연대의 기본 성격이 반(反)대한민국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을 살리기 위해서 그리고 호남을 정상화시키기 위해서 불가피한 작업이다. 그렇다고 호남을 혐오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혐오가 아닌 비판을 해야 한다는 얘기이다.

무슨 일만 생기면 쪼르르 내려가 5.18묘역이나 노무현 묘지에 참배하는 관행부터 버려야 한다. 요즘 우파 정치인들 태도를 보면 국립묘지보다 5.18묘역을 더 절대시하는 것 같다. 이게 말이 되나? 필자는 5.18이 대한민국 헌정 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투쟁이자 희생이라고 인정하지만 이렇게 절대시할 성격은 결코 아니라고 본다. 매달 1만원씩 당비를 내는 국민의힘 책임당원이지만 5.18을 헌법전문에 넣자는 당론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광주와 호남은 친북 반(反)대한민국 성향을 보이는 정치인일수록 지지하는 경향이 있다. 문재인과 송갑석, 강기정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고, 정율성 기념사업이 단적인 증거이다. 이런 호남을 대표하는 5.18을 대한민국 헌법전문에 넣는 게 옳은가? 5.18의 헌법전문 삽입은 광주와 호남의 친북 반(反)대한민국 성향이 완전히 청산된 것이 국민들 눈에 분명해졌을 때 논의를 시작해도 늦지 않다.

안타까운 것은 국민의힘 내부에 이런 얘기를 하는 정치인이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이다. 결국 당원도 국민들도 이 정당에 대한 기대를 점점 접고 있다. 정치는 말로 하는 전쟁이다. 좌파와 선명하게 구별되는 우파의 언어가 없다면 정치를 때려치우고 민주당에 백기투항하는 게 낫다. 그 언어 즉 메시지부터 선명하게 세운 이후에 그 언어를 다루는 태도나 매너를 언급하는 게 맞다. 사실 막말은 민주당의 전매특허이다. 말을 예쁘게 하는 게 정치인의 본업이라는 착각부터 버려야 한다. 본(本)과 말(末)을 분명히 해야 한다. 우파의 메시지를 분명히 하는 게 본(本)이고 그 언어를 깔끔하고 세련되게 다루는 게 말(末)이다. 정치의 근본도 모르는 자들이 그 말(末)만 갖고 따지는 걸 보면 황당하다.

주동식 지역평등시민연대 대표 (前 국민의힘 광주서구갑 당협위원장)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