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9년 8월15일 열린 대한민국 정부출범 1주년 기념행사 속 중앙청 모습.2021.07.04(출처=도서출판 백년동안, 편집=조주형 기자)
1949년 8월15일 열린 대한민국 정부출범 1주년 기념행사 속 중앙청 모습.2021.07.04(출처=도서출판 백년동안, 편집=조주형 기자)

서: 왜 모든 국가는 헌법을 가지고 있을까

오늘날 헌법이 없는 국가는 없다. 심지어 성문의 헌법전을 갖고 있지 않은 영국의 경우에도 불문헌법(不文憲法)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과거와 달리 오늘날에는 헌법이 곧 국가 구성의 기본 요소로 여겨지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근대 주권국가의 탄생 이전에는 헌법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 근대 주권국가의 탄생에 어떤 의미가 있기에 그 이후로는 헌법 없는 국가를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을까? 그것은 근대 주권국가의 탄생 이후 국가의 의미가 변화되었기 때문이다.

고대나 중세의 국가와 근대 주권국가의 결정적 차이점은 국가와 군주의 관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고대나 중세에는 국가를 군주의 소유물로 생각했다. 마치 귀족이나 부자들이 커다란 성이나 장원을 소유하듯이 왕이 국가를 소유한다고 보았기 때문에 왕과 별도로 국가의 과제와 기능을 생각하지 않았고, 단지 국가를 다스리는 왕의 역할과 덕목에 대해 고민하였을 뿐이었다.

그런데 근대 주권국가는 왕의 소유물이 아닌 국가, 그 자체로서 존재하는 국가를 전제로 하여, 왕을 그러한 국가의 주권자로 보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중대한 발상의 전환이었고, 국가관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었다. 즉, 왕이 아닌 국가 자체를 중심으로 국가의 과제, 기능 및 이를 수행하기 위한 국가기관의 구성과 활동방식 등이 논의되기 시작하였고, 왕은 국가의 한 기관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발상의 전환은 왕의 교체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과제가 일관성 있게 수행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의 모색으로 이어졌고, 그것이 헌법의 제정으로 결실을 맺었던 것이다. 이러한 변화가 보편화되면서 모든 국가는 헌법국가가 되었고, 헌법이 없는 국가는 국가가 아니라는 말이 나오게 된 것이다.

물론 형식적으로 헌법을 갖고 있다고 해서 그 의미가 같은 것은 아니다. 어떤 헌법은 그 나라의 현실을 잘 반영하고, 이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역할을 제대로 하는 규범적 헌법이라고 평가되지만, 또 다른 헌법은 그 나라의 현실가 전혀 동떨어진 것일 뿐만 아니라, 실제로 현실에 영향을 거의 미치지 못해서 명목적 헌법, 또는 장식적 헌법으로 지칭되기도 한다.

1948년 5월 31일 대한민국 제헌국회 개회 기도문 모습.(사진=이승만기념관, 편집=조주형 기자)
1948년 5월 31일 대한민국 제헌국회 개회 기도문 모습.(사진=이승만기념관, 편집=조주형 기자)

1948년 헌법 제정의 역사적 의미

우리 민족의 역사에서 최초의 헌법은 무엇일까? 학자에 따라서는 갑오개혁의 결과로 탄생한 1895년 홍범14조, 또는 광무개혁에 의해 반포된 1899년 대한국국제를 최초의 헌법적 문서로 평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근대적 법제의 성격을 갖고 있으나 그 내용과 성격, 형식 등에 비추어 볼 때, 헌법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반면에 1919년 4월 11일 제정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헌법(임시헌장)은 비록 조문의 숫자는 10개에 불과하지만 그 내용이나 성격, 형식 면에서 헌법이라고 평가될 수 있다. 하지만 이를 우리 역사상 최초의 헌법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당시 국권을 상실하고 나라가 없는 상태에서 독립된 주권국가를 전제로 하는 헌법이 만들어질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당시 대한민국임시정부는 국제사회의 공인을 얻지도 못했고, 대한제국의 정통성을 이은 것도 아니며, 국민들의 선거에 의해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 상황에서 1919년 임시정부헌법이 처음 만들어졌고, 이후 5회에 걸쳐 개정되었지만, 이를 우리 역사상 최초의 헌법이라고 보는 것은 무리이다.

그러므로 해방 이후에 비로소 가능했던 1948년 헌법 제정은 우리 역사상 최초의 헌법을 만든 것으로서 그 역사적 의미는 매우 특별하다. 단지 최초의 헌법이기 때문이 아니라, 일제 식민지의 경험을 떨쳐내고 독립된 주권국가를 만드는 초석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헌법을 제2차 세계대전 직후에 탄생된 신생독립국 중의 다수가 그러했듯이 외국의 저명 학자에게 맡기지 않고 우리 손으로 직접 만들었기 때문에 그 의미는 더욱 크다.

비록 완벽한 헌법은 아니었고, 그 이후에 발췌개헌, 사사오입개헌 등에 의한 왜곡도 적지 않았지만, 1948년 헌법은 우리 역사상 최초의 헌법이었을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이 독립된 주권국가임을 국제사회에서 승인받을 수 있게 한 중요한 기준점이기도 했다. 

1945년 해방 이후 3년의 미군정기를 거쳐서 1948년 5⋅10총선을 치른 이후에 최단기간에 헌법을 만들어 1948년 7월 12일 헌법을 제정하여 7월 17일부터 이를 시행한 것은 매우 특별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렇게 짧은 시간에 헌법을 제정할 수 있었던 것은 미군정기 3년 동안 헌법 제정을 위한 준비작업이 계속되었고, 특히 당시 유일한 헌법학자라고 할 수 있었던 유진오 박사가 여러 단체들의 헌법제정 준비작업에 참여하여 –정부형태나 몇 가지 정치적 쟁점을 제외하고는- 각종 단체들의 헌법에 대한 밑그림이 대동소이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자주적인 헌법 제정은 헌법의 생명력을 강화시켰다. 비록 헌법개정에 의한 퇴보도 적지 않게 경험했지만, 헌법을 우리의 것으로 느끼고, 우리 손으로 계속 바꾸어나간다는 것이 헌법의 자주적 발전의 원동력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29일 서울 서초구의 매헌 윤봉길의사 기념관에서 대선 출마 및 정치선언 기자회견을 했다. 2021.06.29(사진=공동취재단, 연합뉴스TV, 국민의힘, 편집=조주형 기자)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29일 서울 서초구의 매헌 윤봉길의사 기념관에서 대선 출마 및 정치선언 기자회견을 했다. 2021.06.29(사진=공동취재단, 연합뉴스TV, 국민의힘, 편집=조주형 기자)

현대 민주국가에서 헌법은 어떤 역할을 하는가

현대 국가에서는 헌법이 곧 국가의 주권성을 상징한다. 그렇기 때문에 일제강점기에는 우리 헌법이 없었고, 해방된 이후에 비로소 헌법을 제정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해방 직후에 바로 헌법을 제정한 것이 아니라 3년 간의 미군정기를 거친 이후 1948년에 비로소 헌법을 제정하고, 독립된 주권국가로 국제사회에서 공인될 수 있었던 것이다.

헌법은 한 국가의 최고법이다. 가장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어서 최고법이기도 하지만, 보다 기본적으로 국가 법질서 전체의 무게 중심 역할을 하는 법이 헌법이기 때문입니다. 현대국가에서 수많은 법률들과 명령, 규칙, 조례 등이 제정되어 시행되는데, 법률을 제정하는 국회의원들조차 모든 법률의 내용을 알고 있지 못하다. 그로 인하여 규범의 충돌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런 경우에 전체 법질서의 통일성을 위해 기준이 되는 것이 최고법인 헌법이다. 헌법에 비추어서 어떤 법률 또는 명령⋅규칙이 합리적인지 여부를 판단하는 위헌법률심판제도, 위헌명령⋅규칙심사제도 등이 인정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헌법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첫째는 헌법의 이념과 원리 등을 규정한 총론(제1장 총강) 부분이고, 둘째는 국민의 인권을 규정한 기본권(제2장 국민의 기본적 권리와 의무)이다. 그리고 셋째는 국회, 정부, 법원, 헌법재판소, 선거관리위원회 등 국가기관의 구성과 권한 등을 규정한 국가조직 부분(제3장~제7장)이다. 그밖에 경제질서와 지방자치, 헌법개정 등의 규정들이 있다.

헌법을 생각할 때, 사람마다 강조하는 부분이 다른 경우가 많다. 어떤 이들은 국민의 기본권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고, 어떤 이들은 헌법의 중심은 역시 권력구조에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헌법은 전체적으로 하나로 이어지며, 기본권과 국가조직이 구분될 수 없다.

국민의 기본권이 제대로 보장되기 위해서도 제왕적 대통령 문제를 포함한 국가권력이 제대로 통제되어야 한다. 아무리 기본권 규정을 잘 다듬어도 국가권력이 오남용되는 것을 막지 못하면, 결국 인권보장이 제대로 될 수 없는 것이다. 그 개헌 논의에서도 기본권의 중요성만을 강조할 것이 아니라 전체로서의 헌법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서 국가권력의 오남용을 제대로 통제하고, 그러면서도 국가기능의 효율성은 확보할 수 있는 헌법시스템이 필요하다.

사실 우리는 아직도 개발독재의 유산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1960~70년대의 개발독재를 통해 압축성장이라 일컬어지는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룬 것이 맞고, 이를 제3세계 국가들이 배우려고 한다는 것도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당시 효과가 있던 시스템이라고 해서 21세기 대한민국에도 잘 맞는다고 말하기 어렵다.

당시에는 인재도, 자본도 귀한 시절이었기 때문에 대한민국 최고의 인재들을 청와대에 모아 놓고 이들에게 강력한 권한을 부여했으며, 부족한 자본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선택과 집중의 논리에 따라 재벌을 육성하기도 했다. 그것이 나름의 성공을 거둔 것이다. 하지만 인재가 많아지고, 자본도 여유가 생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개발독재 시스템은 구시대의 유물일 뿐이다.

그런데 대한민국 정치는, 그리고 헌법은 아직도 그 유산을 벗어버리지 못하고 있다. 청와대 정부니, 제왕적 대통령이니 하는 것들이 바로 그런 유산을 대표하는 것이다.

인왕산 범바위에서 바라본 서울 일출 전경. 2022.01.28.(사진 = 서울관광재단, 일부 편집=조주형 기자)
인왕산 범바위에서 바라본 서울 일출 전경. 2022.01.28.(사진 = 서울관광재단, 일부 편집=조주형 기자)

맺음: 대한민국 헌법의 나아갈 길

21세기 대한민국은 새로운 도약을 위해 새로운 헌법을 필요로 한다. 1987년 헌법은 역대 최장수헌법으로서 오랜 기간 역할을 했지만, 이제는 시대의 변화를 수용하는 새로운 헌법이 요구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헌법학계에서는 시대정신에 맞는 헌법개정의 필요성을, 정치학계에서는 87년 체제의 한계와 개혁 필요성이 계속 이야기되고 있다. 물론 각종 법률의 개정, 정치관행의 개혁 등을 통해 변화를 수용할 수 있는 부분이 있으나 가장 근본적인 개혁은 헌법개정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특히 2017년 국회 개헌특위 당시의 화두였던 제왕적 대통령제의 극복은 헌법개정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밖에도 새로운 헌법에 담아야 할 내용이 적지 않다. 기본권 분야에서도 정보기본권 등 새로운 기본권의 명문화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고, 지방분권의 강화에 대한 논의, 경제 분야에서의 제4차 산업혁명과 관련한 내용이 반영되어야 한다는 주장, 사회 분야에서의 저출산⋅고령화 문제 등이 헌법개정과 관련하여 시대적 변화의 반영으로서 고려되어야 할 사항으로 많이 거론되고 있다.

또한, 단순히 시대의 변화를 반영한다는 점을 넘어서 적극적인 발전을 위해 헌법의 틀을 바뀌어야 할 사항들이 있다. 예컨대 제왕적 대통령의 극복을 위한 대통령의 권한 축소, 특히 대통령이 국회와 사법부 위에 군림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의 개선은 헌법개정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리고 청와대 정부의 극복 문제도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를 약속했으나 지키지 않았고, 윤석열 대통령은 대통령실을 청와대에서 용산으로 이전했으나 그것이 청와대 정부를 극복한 내각 중심의 국정 운영이라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장영수 교수.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장영수 교수.

장영수 객원 칼럼니스트(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헌법학 교수)

관련기사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