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오전 이종섭 주(駐)호주 대사가 귀국함에 따라, 이 대사 수사를 두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이 대사 간 신경전이 공수(攻守) 교대 양상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9월 더불어민주당이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을 ‘채 상병 사망사건’ 수사 방해 의혹 등으로 고발함에 따라, 공수처가 수사를 시작했다. 더불어민주당과 공수처의 공격이 시작된 것이다.

해병대 채 상병 순직 사건 외압 의혹으로 수사받는 이종섭 주호주 대사가 21일 오전 정부 회의 일정 참석을 위해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로 들어서고 있다. 이 대사는 법무부의 출국 금지 해제 결정으로 지난 10일 호주로 출국한 지 11일만에 귀국했다. 2024.3.21. [사진=연합뉴스]
해병대 채 상병 순직 사건 외압 의혹으로 수사받는 이종섭 주호주 대사가 21일 오전 정부 회의 일정 참석을 위해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로 들어서고 있다. 이 대사는 법무부의 출국 금지 해제 결정으로 지난 10일 호주로 출국한 지 11일만에 귀국했다. 2024.3.21. [사진=연합뉴스]

이같은 공격에 이 대사는 지난 21일 귀국을 통해 ‘공수처 수사에 당당히 응하겠다’며 소환 조사를 자청했다. 그간 더불어민주당과 공수처가 이 대사의 출국을 두고 ‘도피성 출국’이라고 공격한 데 대한 역공인 셈이다.

준비 안 된 공수처= 이종섭이 귀국하니 “당분간 소환 조사 어렵다” 발표

하지만 공수처는 지난 22일 대변인실 명의의 입장문을 통해 “당분간 소환 조사가 어렵다”는 입장을 밝혀, 그간 이 대사에 대한 조사 준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음을 실토했다. 지난해 12월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에 대한 출국금지만 해놓고 수사에 아무런 진척을 보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드러낸 셈이어서 빈축을 사고 있다. 수사가 전혀 진행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작정 출국 금지부터 한 것은 ‘인권침해’ 우려가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공수처가 이 대사를 처음 소환 조사한 것은 지난 7일이다. 지난해 9월 민주당의 고발 이후 6개월 만에 조사가 시작된 것이다. 12월에 출국 금지를 했기 때문에, 통상 1~2월에는 조사가 시작됐어야 한다.

그 와중에 이 대사는 지난 4일 주호주 대사에 임명됐고, MBC가 6일 ‘이종섭 출국 금지’를 보도하자 황급히 소환 조사를 한 것이다. 하지만 공수처는 이 대사에 대한 질문지도 제대로 작성해놓지 않아, 조사는 4시간 만에 약식으로 끝났다.

이 대사는 공수처 소환 조사 사흘 뒤인 지난 10일 호주로 출국했다. 주호주 대사로 임명된 다음날인 5일 이 대사는 출국 금지에 대한 이의 신청을 냈고, 법무부가 8일 출국 금지를 해제함에 따라 출국이 가능해진 것이다.

채 상병 사망사건에 대한 수사는 군 수사기관이 아니라 경북경찰청이 진행 중

더욱이 채 상병 사망사건에 대한 진상 조사는 경북경찰청이 진행 중이다. 군 수사기관이 담당할 일이 아니라는 점이 확인되고 있는 셈이다.

이 대사의 출국을 두고 민주당은 ‘도피성 출국’이라고 주장했다. 공수처는 이 대사의 출국에 대해 ‘우리는 출국을 허락한 적이 없다’며 ‘피의자를 왜 빼돌렸냐’는 태도로 공세적인 입장을 취했다. 마치 정부여당이 이 대사를 빼돌리는 바람에 조사를 못하고 있다는 태도였다.

민주당과 공수처의 이런 입장은 정치적 이슈에 민감한 유권자들의 마음을 흔들었고, 이 대사가 출국한 직후인 12~14일에 실시된 한국갤럽의 여론조사에서 서울지역 국민의힘 지지도는 전주 대비 15%p나 폭락했다. 전주 45%에 달한 서울지역 국민의힘 지지도는 30%로 주저앉았다. 반면 민주당은 전주 대비 8%p 상승해 32%로 지지세가 뒤바뀌고 말았다.

민주당의 언론플레이에 서울 지역 유권자들은 ‘이종섭 대사가 국방부 장관 시절에 채 상병의 사망과 관련해 수사를 방해한 것이 사실’이라는 인식을 갖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자녀를 군에 보낸 50대 유권자들이 국민의힘에 등을 돌렸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하지만 이 대사를 둘러싼 수사 방해 의혹의 전말은 민주당의 주장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 법조계와 정치권의 인식이다.

[사진=채널A 캡처]
[사진=채널A 캡처]

채 상병 사망사건 조사 권한은 경찰에 있어...박 대령의 조사자료 작성은 권한 밖의 일

작년 7월 집중호우 실종자 수색에 투입된 해병대 채 상병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대사는 채 상병 사망 당시 국방 장관이었다. 작년 9월 민주당 ‘해병대원 사망 사고 진상 규명 태스크포스(TF)’가 이 대사를 ‘직권남용’ 혐의로 공수처에 고발했다.

채 상병이 사망하자 박정훈 당시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은 경위를 조사한 뒤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 등 8명에게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해야 한다는 자료를 작성해 경찰에 이첩했다. 당시 국방 장관이던 이 대사는 이를 보고받고 결재했다가 입장을 바꿔 경찰에 넘긴 보고서를 회수하라고 지시했다. 민주당은 이 지시가 수사 방해(직권남용)에 해당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민주당은 신범철 전 국방 차관, 임종득 전 국가안보실 2차장 등도 공수처에 고발했고 공수처는 이들을 입건했다.

21일 유튜브 ‘어벤저스 전략회의’에 출연한 이현종 문화일보 논설위원은 “개정된 군사법원법에 따르면, 군 내에서 인사사고가 생길 경우 군검경찰이 수사를 못하고, 인지가 되면 바로 경찰로 넘겨서 수사를 해야 된다”고 설명했다. 군 내부에서 잦았던 폭행 사건 등으로 ‘군에서 내부적으로 수사를 하게 되면 덮어버릴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문재인 정부에서 민주당이 개정했다는 설명이다.

함께 출연한 신지호 전 의원 역시 “(그 사망사건에 대해) 어떤 법을 적용해서 어떤 혐의로 특정할지는 민간경찰에서 하는 것이다. 해병대 수사단장인 박정훈 대령이 하는 게 아니다”고 단정했다. 따라서 박 대령이 오히려 권한 밖의 일을 했다는 주장이다.

채 상병 조사 자료 회수 지시는 국방 장관의 권한 행사로 볼 수 있어

따라서 박 대령이 채 상병 사망사건에 대해 조사할 권한이 없었고, 권한이 없는 박 대령이 만든 조사 자료를 국방 장관이 회수하도록 지시한 것은 직권남용이 아니라는 해석이다.

법조계에서도 이종섭 당시 국방 장관의 ‘자료 회수’를 직권남용으로 인정받기 어려울 것 같다는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직권남용 범죄가 성립하려면 직무 권한을 가진 공직자가 그 권한을 남용해 다른 사람에게 의무에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권리 행사를 방해한 사실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 법조인은 “이 대사가 (해병대 수사단이) 경찰에 이첩한 조사 자료를 회수하게 한 것은 국방 장관의 권한 행사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해병대 수사단의 수사를 방해해야 직권남용에 해당하는데, 상병 사망에 대한 수사권은 해병대 수사단이 아니라 경찰에 있다고 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해병대 수사단이 수사 결론을 경찰에 보낸 것이 월권이라는 지적도 제기돼

조선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대통령실도 직권남용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한다. 한 법조인은 “이 대사의 직권남용이 인정되지 않는다면 대통령실도 마찬가지”라며 “대통령실 관계자가 자료 회수와 관련해 이 대사에게 전화했더라도, 직권남용이 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라고 판단했다.

또한 수사권이 없는 해병대 수사단이 ‘해병대 1사단장 등에게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해야 한다’며 사실상 수사 결론을 내려 경찰에 보낸 것 자체가 월권이라는 지적도 있다. 현재 채 상병 사망이 현장 지휘관 등의 업무상 과실치사에 해당하는 것인지는 경북경찰청이 수사 중이다.

한동훈, 공수처와 민주당의 ‘정치질’이라고 강력 비판

[사진=채널A 캡처]
[사진=채널A 캡처]

한동훈 위원장은 21일 대구에서 열린 윤재옥 원내대표 선거사무소 개소식에서 이 대사 문제에 대해 "이종섭 (주호주) 대사가 귀국했다. 이제 답은 공수처와 민주당이 해야 할 일이지, 정부와 국민의힘이 해야 할 일이 아니다"고 밝혔다.

앞서 한 위원장은 채 상병 사망사건 수사 외압 의혹으로 공수처의 수사를 받는 이 대사에 대해 '공수처의 즉각 소환'과 '이 대사의 즉각 귀국'을 요구했고, 이 대사는 21일 오전 귀국했다.

한 위원장은 "우리는 외교 결례를 무릅쓰고 대사를 귀국하게 했다"며 "정말 문제가 있었으면 빨리 조사하고 끝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아직 (이 대사를 조사할) 준비가 안 됐다면, 공수처와 민주당이 총선을 앞두고 정치질하는 것"이라며 "이렇게 중요한 선거를 앞두고 이렇게 시끄럽게 언론플레이하고, 직접 입장문을 내는 수사기관을 본 적이 없다"고 공수처를 비판했다.

그는 "우리는 민심에 민심 순응해서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조치를 하는 정당이다. 민심을 거부하고 있는 민주당을 심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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