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학원 완전 철수하라"...中 대사관 정문 앞 집회 금지한 경찰
"규모가 작다고 하더라도 中 대사관에 대한 기능·안녕 침해 우려 없다고 단정 못 해" 이유
서울행정법원, 지난 12일 첫 변론 진행..."그렇다면 '수요시위'는 왜 금지 않나 해명하라"

주한 중국대사관 정문 앞에 신고된 집회와 관련해 경찰 측 금지 통고 처분을 취소해 달라는 소송이 제기된 가운데, 법원이 시민단체 ‘정의기억연대’의 주한 일본대사관 정문 앞에서 개최돼 온 ‘수요시위’와의 형평성 문제에 주목했다.

이 사건을 심리 중인 재판부는 경찰에 대해 ‘수요시위’에 대해 관련 법률에 따라 금지 통고를 하지 않고 있는 이유를 해명할 것을 요구했다. 이 사건 선고는 내달 초 이뤄질 예정인데, 그 내용에 따라서는 ‘국내 주재 외국의 외교기관 인근 집회에 대한 폭넓은 허용’이라는 결과가 될 수도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 12일 오전 10시 30분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부장 최수진)는 서울남대문경찰서장으로 상대로 제기된 옥외집회금지통고처분취소 소송의 첫 변론을 진행했다.

이 사건 원고는 지난해 8월 서울 중구 명동 소재 주한 중국대사관 정문 경계 10미터 지점 인도상에서 ‘공자학원의 완전 철수’를 촉구한다는 내용으로 9명 규모의 집회를 관할 경찰서인 서울 남대문경찰서에 신고했다.

그런데 동(同) 경찰서는 3건의 집회 모두에 대해 금지 통고를 했고, 이번 소송은 이에 대한 불복으로 제기된 것이다.

주한 중국대사관 앞 풍경. []
주한 중국대사관 앞 풍경. 2023. 7. 9. [사진=펜앤드마이크DB]

◇“정의기억연대는 되는데, 나는 왜 안 되는가?”

“경찰은 집회·시위에 대해 헌법상 금지된 검열·허가를 자행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 원고는 같은 조건이되 목적만 다른 두 집회에 대해 경찰이 편파적 법 적용을 통해 위법한 집회 관리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 대표 사례로 지난 30년 넘도록 열려온 ‘수요시위’를 들었다.

‘수요시위’는 ‘일본군 위안부 강제연행 문제 해결’을 목적으로 법적(法的) 배상과 전쟁범죄 사죄 등을 일본 정부에 요구하면서 지난 1992년 1월 서울 종로구 소재 옛 주한 일본대사관 정문 앞에서 처음으로 개최됐다.

특히 수요시위 1000회차를 맞아 해당 집회를 개최해 온 시민단체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약칭 ‘정대협’, 정의기억연대의 전신)가 주한 일본대사관 정문 건너편 15미터 지점 인도상에 ‘일본군 위안부’ 동상을 설치한 2011년 12월14일에는 동 대사관이 있는 서울 종로구 율곡로 2길 일대를 수요시위에 참여한 군중이 가득 메웠다. 집회 참가자들과 주한 일본대사관 정문 사이의 거리는 3미터에 불과했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약칭 ‘집시법’) 제11조는 국내 주재 외국의 외교기관 또는 외교사절의 숙소 경계 100미터 이내의 장소에서의 집회·시위 개최를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2000년 제기된 집시법 제11조 중 국내 주재 외국의 외교기관 부분 위헌 확인 소송에서 헌법재판소는 ‘조건을 붙여 집회를 허용하지 않는 것’은 ‘위헌’임을 확인했다(2000헌바67). 이에 법 개정이 이뤄져 ▲해당 외교기관 등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 경우 ▲대규모가 아니거나 대규모로 확산될 위험이 없는 경우 ▲해당 외교기관 등의 업무가 없는 휴일에 개최하는 경우 중 어느 한 가지에 해당할 경우에는 ‘금지 원칙’에도 불구하고 집회를 개최할 수 있게 됐다.

서울특별시경찰청과 서울 종로경찰서는 ‘수요시위’가 이같은 세 가지 단서 중 ▲대규모가 아니거나 대규모로 확산될 위험이 없는 경우에 해당하기 때문에 집회·시위 및 표현의 자유를 확대하라는 헌법의 명령에 따라 ‘수요시위’에 대해 특별히 금지해오지 않아 왔다는 입장이다.

지난 2011년 12월14일 서울 종로구 소재 주한 일본대사관 정문 앞에서 개최된 제1000회차 수요시위의 모습. 2011. 12. 14. [사진=연합뉴스]
지난 2011년 12월14일 서울 종로구 소재 주한 일본대사관 정문 앞에서 개최된 제1000회차 수요시위의 모습. 2011. 12. 14. [사진=연합뉴스]

문제는 바로 이 지점에서 발생했다.

현재 ‘수요시위’와 관련한 집회신고를 하고 있는 정의기억연대는 매번 수백명 규모로 그 개최를 예정하고 있다.

그런데 이 사건의 경우 신고된 집회 참가자 수가 9명에 지나지 않았다. 이처럼 ‘수요시위’와는 그 규모면에서 큰 차이가 남에도, 경찰은 이 사건 집회가 주한 중국대사관의 기능·안녕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원고는 구석명신청을 통해 수백명 규모의 ‘수요시위’가 주한 일본대사관에 대한 기능 ·안녕 침해 우려가 없는 반면 그 규모가 9명에 불과한 이 사건 집회들이 주한 중국대사관에 대한 기능·안녕 침해가 우려가 있다고 판단한 이유가 무엇인지 경찰이 해명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원고는 이 부분 해명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경찰이 특정 단체·개인 등에 대해 집회·시위 개최와 관련한 일방적 편의를 제공하는 한편 특정 단채·개인 등에 대해서는 별도의 기준을 적용함으로써 집회·시위에 대한 검열·허가를 자행하고 있음을 경찰이 자백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재판부 역시 경찰에 대해 원고가 문제 삼고 있는 ‘형평성’ 부분에 대해 피고 측이 해명하도록 권고했다.

이 사건 선고는 오는 2월8일 오후 13시 55분에 이뤄질 예정이다.

◇”국내 주재 외교기관에 대한 경비 업무 수행 어려워져”…경찰 내부 사정은?

경찰 내부적으로는 대사관 등 국내 주재 외국의 외교기관에 너무 인접한 장소에서 열리는 집회·시위를 한번 허용하기 시작하면 경찰 차원의 경비 업무 부담이 과도히 가중된다는 압박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서울 종로구 세종로 소재 주한 미국대사관의 경우 이전부터 국내 좌익 세력의 타겟이 돼 왔는데, 종북(從北) 단체로 알려진 한국대학생진보연합(약칭 ‘대진연’) 회원 수명이 미 대사관저를 사다리를 이용해 월담한 지난 2019년의 사건을 의식하고 있다고 한다.

2016년 10월 대법원에서 ‘이적단체’로 규정된 ‘자주통일과 민주주의를 위한 코리아연대’의 후신(後身) ‘민중민주당’의 전위 조직 ‘청년 레지스탕스’ 회원들도 ‘미 대사관 진격투쟁’을 때때로 감행하고 있기도 하다. ‘미 대사관 진격투쟁’이란 주한 미국대사관 정문을 향해 ‘청년 레지스탕스’ 회원 몇 명이 ‘미군은 물러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뛰어가는 방법으로 진행하는 시위를 말한다.

서울 종로구 소재 주한 미국대사관 앞에서 ‘정당연설회’를 빙자한 미신고 집회를 개최 중인 민중민주당 관계자들. 2020. 1. 22. [사진=연합뉴스]
서울 종로구 소재 주한 미국대사관 앞에서 ‘정당연설회’를 빙자한 미신고 집회를 개최 중인 민중민주당 관계자들. 2020. 1. 22. [사진=연합뉴스]

또 주한 중국대사관 코앞에서 열리는 집회에 대해 아무 조치도 안 했다가 발생할 수도 있는 외교적 문제 등에 대해 경찰 조직이 면책받고자 아무 이유라도 붙여서 이 사건 집회들을 금지했다는 말도 들린다. ‘그냥은 안 되니 소송을 통해 들어오라’는 것인데, 소송에서 패소해 집회를 허용하게 될 경우, 경찰로서는 변명거리라도 생긴다는 취지다.

이에 대해선 경찰의 행정 편의적 발상으로써 공정한 법 집행으로 볼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주한 일본대사관 인근에서 ‘반(反) 수요시위’ 집회를 개최해 온 시민단체 위안부법폐지국민행동의 대표 김병헌 국사교과서연구소 소장은 “애초부터 ‘수요시위’를 허용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예외를 두다 보니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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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1월8일 주한 일본대사관 정문 앞에서 개최된 첫 수요시위 기록 사진. 1992. 1. 8. [사진=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연합뉴스]

김 소장은 “소위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불거진 1990년대 초만 하더라도, 군부 통치가 끝나고 김영삼 문민 정부가 등장하던 시점에 정계(政界)에서부터 불어닥친 ‘역사 바로 세우기’ 광풍 속에서 ‘반일’ 선동이 먹혀든 때였다”며 “그런 와중에 일본군이 조선의 소녀들을 납치해서 일본군 성노리개로 삼았다는 ‘일본군 위안부’ 프로파간다 앞에서 경찰은 아무 힘도 쓰지 못하고, 오히려 심정적으로는 그들과 같은 편이 되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그는 “이번 소송에서 경찰은 ‘《외교 관계에 관한 비엔나 협약》에 따라 접수국은 외교기관에 대한 품위와 안녕을 보장할 의무를 진다’며 ‘비록 소수라고 하더라도 해당 대사관 등의 기능·안녕 침해 우려가 없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취지로 항변했는데, 그런 기준이라면 경찰은 ‘수요시위’부터 금지해야 했을 것이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서 “경찰 스스로 ‘직무유기’를 인정하고 있다고밖에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펜앤드마이크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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