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국왕제 폐지의 효시일까.영국인 다수는 며칠 뒤에 열릴 찰스 3세 국왕의 대관식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뉴욕타임스가 30일(현지시각) 전했다.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여론조사업체 유거브(YouGov)는 최근 영국 거주 성인 3070명을 대상으로 '찰스 3세의 대관식에 관심이 있느냐'고 물었다.그 결과 응답자의 64%는 대관식에 '관심이 거의 없다' 혹은 '전혀 없다'라고 대답한 것으로 나타났다.특히 18세부터 24세까지의 응답자는 무려 75%가 '전혀 관심이 없
지난 9일 공개된 넷플릭스 드라마 '더 크라운(The Crown) 시즌5'가 故 엘리자베스 2세 및 찰스 3세 현 영국 국왕과 관련해 논란을 빚고 있다. 찰스 3세가 왕세자이던 시절 어머니의 양위를 실제 논한 것처럼 묘사했기 때문. 이는 '픽션(fiction)'인 '더 크라운'이 역사 드라마라는 장르 특성상 시청자에겐 흡사 '역사적 사실'을 전하는 것처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란 분석이다.문제가 되는 해당 내용은 시즌5 1화에 등장한다. 영국 선데이타임스가 1991년 8월 11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가 지난달 5일(현지시각) 취임한 후 45일만에 역대 '최단기'의 불명예를 안고 사임하게 되면서 영국 정치의 혼란이 더욱 가중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트러스 총리에 관한 흥미로운 언급들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영국 국내는 물론이거니와 한국에서도 트러스 총리에 대해서 이런저런 말들이 여럿 나오고 있기 때문.먼저 트러스 총리 사임 여부를 내기로 풀어낸 사례가 영국에서 등장했다. 영국의 타블로이드 매체 데일리스타(Daily Star)가 '양상추'가 먼저 썩을 것인지 트러스 총리가 먼저
리즈 트러스(Liz Truss) 영국 총리가 사임한다고 밝혔다. 이는 트러스 총리가 취임한 지 45일만에 발표된 사의 표명으로, 트러스 총리는 역대 최단명 영국 총리의 '불명예'를 안게 됐다. 트러스 총리는 20일(현지시각) 런던 다우닝가 10번지 총리 관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찰스 3세 국왕에게 사임의 뜻을 밝혔다"며 "선거 공약을 지킬 수 없어 물러난다"고 했다.트러스 총리는 지난 9월 5일 보리스 존슨 전 총리의 뒤를 이어 보수당 당수가 됨과 동시에 영국 총리직을 맡았다. 당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그달
현지시간 8일 영국 왕실의 여름 별장인 스코틀랜드의 밸모럴 성에서 96세를 일기로 서거한 엘리자베스 2세를 추모하는 분위기가 영국 전역에서 계속되고 있다. 여왕의 관이 처음 안치됐던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무르익었던 추모 열기는 현지시간 13일 관이 런던에 도착해 웨스트민스터 홀에 안치되고 난 후 시작된 끝 없는 조문행렬로 이어지고 있다. 조문객들은 남녀노소, 국제도시 런던에 걸맞게 백인·흑인·황인 할것 없이 다양한 모양새다.모든 시민이 참여하는 직접 민주주의의 시초가 고대 그리스라면, 의회로 대표되는 간접 민주주의의 시초는 영국이
엘리자베스 2세를 이어 영국 왕위에 오른 찰스 3세의 행동이 연일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그가 현지시간 10일 열린 즉위식에서 즉위 선언문에 서명하려 할 때 오른팔에 걸리적거리는 만년필 통을 치우라며 측근에게 인상을 쓴 장면이 영상으로 공개되는가 하면 현지시간 13일에는 북아일랜드 벨파스트(Belfast)에서 만년필에서 잉크가 샌다며 짜증을 냈던 일화가 보도됐다. 이에 일각에서는 '어머니 엘리자베스 2세보다 못한 인격과 품성을 지녔다', '찰스 3세 대에 이르러 영국 왕실이 폐지될 조짐이 보인다' 등의
70년이 넘는 재위기간 동안 '군림하되 통치하지는 않는다'는 원칙 아래 안으로는 연합왕국을 유지하고 밖으로는 영연방의 존속을 위해 노력했던 엘리자베스 2세가 현지시간 8일 사망한 지역은 영국의 핵심 잉글랜드가 아닌 북부의 스코틀랜드였다. 여왕이 마지막 숨을 내쉬었던 곳은 스코틀랜드의 밸모럴 성(Balmoral Castle). 엘리자베스 2세는 왜 잉글랜드가 아닌 스코틀랜드에서 최후를 맞았을까.엘리자베스 2세가 단지 영국 왕실의 여름 별장으로 알려진 밸모럴 성에 피서를 갔다가 때마침 찾아온 건강 악화로 서거했다고 보는
웨일스 공 찰스는 10일 오전 국왕으로 공식 즉위를 선포하면서 정식으로 영국의 국왕 찰스 3세가 됐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서 찰스 3세는 대관식을 하기 전까진 왕이면서도 왕이라 할 수 없는 상태다.유럽의 전통적 개념에 따르면 국왕의 정통성은 '대관식(corronation)'과 그 과정 중에서 이뤄지는 '도유식(塗油式, Annointing)'이 있은 후에라야 인정되기 때문. 영국은 군주제가 잔존하고 있는 유럽의 다른 나라들과 달리 대관식과 도유식의 전통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유럽에서 '핫바지
엘리자베스 2세의 서거에 아프리카 국가들도 추모한단 반응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이는 엘리자베스 2세가 아프리카와 긴밀한 관계를 맺으려 노력한 결과란 평가다.엘리자베스 2세는 아프리카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어온 것으로 판단된다. 그녀는 1947년 21번째 생일을 남아프리카 여행 중 맞이했다. 케이프타운에서의 유명한 연설에서 엘리자베스 공주는 "영연방에 헌신하고 있음을 밝혔으며 마치 전 생애를 남아프리카에서 보낸 것처럼 남아프리카를 집으로 느낀다"고 했다.또한 그녀가 부왕 조지 6세의 부고를 접한 곳은 영연방 순방의 첫 방문
엘리자베스 2세가 장장 70년간의 재위기간 끝에 현지시간으로 지난 8일 오후 6시 30분경 서거했다. 엘리자베스 2세는 1952년 2월 6일 즉위해 70년 214일간 왕위를 유지함으로써 영국 역대 왕들 중 최장기간 재위했으며, 여왕으로서는 63년 216일 동안 재위했던 고조모 빅토리아 여왕보다도 오래 왕위를 유지해 세계 역사상 가장 긴 재위기간을 보유한 여왕이 됐다. 하지만 엘리자베스 2세는 원래 영국 왕위에 오를 수 있을만한 계승권자라고 보기 어려웠다. 그런데 어떻게 엘리자베스 2세는 여왕이 될 수 있었을까.이를 알기 위해선 먼저